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가 태생한 이유는 바로 검찰이 가진 독점적 권한을 견제하고, 검찰이 하지 못한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물론 신생 조직이다 보니까 공수처가 제대로 서려면 처장이 여러 번 교체될 만큼의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 정부와 국민께서 공수처에 힘부터 제대로 실어줘야 합니다."
공수처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찰개혁에 앞서, 공수처가 본래의 설립 취지를 구현할 수 있으려면 '실질적인 지원과 입법 등 제도 보완을 통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쐐기돌로서, 애초 권력형 비리와 검찰의 독점적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수사력 논란과 성과 부족, 인력·조직의 한계 등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에 시달려왔습니다.
결국은 '사람'…공수처 성패의 핵심은 인적 쇄신
공수처의 고질적 인력난은 검사들의 불안정한 신분에 있습니다. 공수처법 제8조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 임기는 3년이며, 3번 연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매번 인사위원회 심사와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외풍에 휘둘릴 우려가 크다는 겁니다. 실제로 임기 만료 직전까지 연임 재가가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었습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13일 이대환 수사4부 부장검사와 차정현 수사기획관(부장검사)을 포함해 2021년 임명된 검사 4명의 연임을 의결했지만, 윤석열씨가 이들을 재가한 건 10월25일이었습니다.
부장검사 출신인 다른 변호사는 "불안정한 신분 구조는 우수한 인재가 공수처로 들어오는 걸 막을뿐더러 조직의 업무 연속성과 사명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공수처의 특성상 외부로부터 받는 압박이 상당한 데, 구성원들은 신분 보장이 안 되니까 아무리 열심히 수사하다가도 금방 지쳐서 나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공수처 검사의 평균 근무 기간은 761일, 2년을 겨우 넘기는 셈입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사가 7년마다 '검사적격심사'를 받듯, 공수처 임기 제도(3년)도 최소한 현재 검찰청 검사들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해당 제도는 검사의 직무수행 능력, 성실성, 청렴성 등 자질을 평가,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퇴직을 명할 수 있도록 한 장치입니다.
윤석열씨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된 지난 1월15일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청사로 윤씨가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수처의 수사력을 키우기 위해선 신규 인력을 교육해 양성하는 도제식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또 다른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도 하루아침에 수사력을 갖춘 게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내부적으로 수사 역량을 기르고 문화를 쌓아온 것"이라며 "공수처도 이제부터는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 수사력을 높이는 건 검사의 역량을 키우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사관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공수처도 하위직 공무원을 공개 채용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 뒤 수사관으로 키우고 자체 수사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검찰이나 경찰은 9급 하위직 공무원을 채용한 후 일정 교육 기간과 근무 기간을 마치면, 수사 부서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검찰수사관은 8~9급 땐 사건과 또는 운영 지원과 등 행정 부서에서 일하다가 7급으로 승진하게 되면 검사실 등에 배속돼 수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수처는 다른 기관에서 7급 상당의 직책에 있었던 사람들이 수사관으로 채용됩니다. 갓 생겨난 조직이다 보니까 수사를 경험해본 사람을 뽑아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겁니다. 물론 장점도 있지만, 원래 있던 관별 문화나 수사 방식에 익숙해진 수사관끼리도 부딪치고 자칫 수사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공수처만의 수사 문화를 만들기 위한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 1월3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수사관들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제도 보완 필수…예산 확충, 인프라 개선해야
공수처의 수사 범위와 권한에 대한 명확한 정비도 필요합니다. 12·3 비상계엄 수사에서도 드러났듯 법률상 수사·기소 범위가 제한된 탓에 수사 착수 단계부터 공소 유지, 공판 과정에서까지 논쟁이 반복됩니다. 이는 구성원들의 수사 동력이 저하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진다는 지적입니다. 공수처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이 한정됐고, 수사 대상 범죄 역시 법에 열거된 일부로만 제한되어 있다 보니까 '이 사건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 해당하나' 이것부터 고민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입니다. 수사 대상 범죄는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 △공무상비밀누설 △선거방해 △제3자뇌물제공 △알선수뢰 △뇌물공여 등입니다. 하지만 기소 대상은 판·검사, 고위 경찰입니다.
공수처 청사 건립, 부족한 디지털포렌식 장비 구입·유지 비용 등 인프라·예산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김진욱 전 공수처장도 퇴임 후 쓴 『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는 책에서 "공수처가 정부종합청사 안에 입주한 관계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디지털포렌식 장비 구매 및 유지 예산은 공수처 출범 후 매년 10억원 정도로 유지되다가 2025년도 예산에선 5억4100만원으로 잡혔습니다. 예년의 절반 수준입니다. 기존 장비의 라이선스 갱신도 어려운 겁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 공수처만의 역할과 위상을 확립하려면 특화된 수사 분야 개척과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공수처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자본시장법, 경찰은 현장 수사에 강점을 보이듯 공수처도 직권남용, 뇌물, 부패 범죄 등 고위공직자 범죄 중 특화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 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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