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5월 14일 경남 창원시 상남분수광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유정 기자] '소년공 출신'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입니다. 정치권 변방에서 비주류의 삶을 산 이 후보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후보가 21대 유력한 대선 후보로 천하를 평정하기까지의 삶을 <뉴스토마토>가 돌아봤습니다.
중학교 대신 공장으로…흙수저 중 '흙수저'
1963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 후보는 가난한 10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후보는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해 정확한 생일조차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호적상 1964년 12월 22일 생일은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가 을사오적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 날로, 이재명의 부친이 일부러 이날을 생일로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후보는 1976년 삼계국민학교 졸업 후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는데요. 이 후보는 어려웠던 형편 탓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일찍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6년 동안 여섯 곳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공장 간부들의 폭행과 임금체불 등을 버티며 소년공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리는 사고로 장애 6급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이 후보는 공장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손에 놓지 않았습니다. 이 후보는 중·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모두 검정고시로 통과한 후, 독하게 학력고사를 준비한 끝에 중앙대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학력고사만으로 대입 제도를 바꾼 것이 이 후보에게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 후보는 등록금 전액 면제와 월 생활 보조금 지원 혜택을 받고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은 이 후보의 '기본소득'이 돼 주었습니다.
이 후보는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입소한 사법연수원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강을 듣고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후보는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에 참여하며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 후보는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제기,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 제기를 주도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이 민선 5기 지방정부 출범 1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모라토리엄 해결 방안을 비롯한 시정 현안과 지방자치 경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2011.06.12. (사진=연합뉴스)
성남서 시민운동…끝내 정치권 입문
2004년 이 후보는 성남 구도심 내 종합 병원들이 폐업하자 성남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위한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당시 성남시의회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시의원들에 의해 조례안이 47초만에 부결되자, 이 후보는 시민 운동의 한계를 깨닫고 정치 입문을 결심합니다.
이 후보는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됩니다. 이 후보는 취임 직후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 지급유예)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원을 갚았습니다. 정치 입문의 계기였던 성남시립의료원도 2013년 착공했습니다. 이어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하며 '3대 무상 복지 정책(청년배당·무상 산후조리·무상교복)'을 펼쳤습니다. 포퓰리즘 논란이 따라붙지만 이 후보는 무상 복지 정책으로 유명세를 타며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후보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 주장하면서부터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보는 2017년 19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문재인(57.0%), 안희정(21.5%) 후보에 이어 3위(21.2%)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35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행정가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이 후보는 도지사로서 청년배당,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시 유치, 코로나19 대응 등에 성공하며 '일 잘하는 행정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1야당 대표로 '세 번째' 대권 도전
2022년 20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이 후보는 두 번째 대권의 문을 두드렸지만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낙선 이후 이 후보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도전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두 차례 연속 당선돼 당 대표에 올랐고 당내 주류로 부상했습니다.
이 후보는 거대 야당 대표로 윤석열 정권과 각을 세우며 총선 압승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법리스크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고,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 위기에 몰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당시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해 계엄 해제를 끌어내고, 탄핵 촉구 여론을 주도하며 유력 대권 주자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게다가 선거법 항소심 무죄로 사법리스크를 해소했습니다.
이 후보는 21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89.77%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섭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선출 수락연설에서 "3년 전 나라의 운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패했다. 모두 제 부족함 때문"이라며 "더 낮은 자세로 정치의 사명이자 대통령의 제1과제인 국민 통합의 책임을 확실히 완수하겠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희망과 열정이 넘치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답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김유정 기자 pyun979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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