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관짝 같은 고시원에서 매일같이 소주를 마시며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끼니도 라면 하나 먹는 게 전부였어요. 대부분은 우울해서 굶었죠. 지금은 1인가구지원센터 도움으로 밥을 잘 챙겨 먹어요.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도 가고, 잘 씻고, 빨래와 청소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일상을 살게 됐어요. 삶이 완전히 변한 거죠. 이제는 미래가 기대될 만큼 회복됐어요."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이음마루에서 열린 동대문구1인가구지원센터의 '동일이의 식사메이트' 사업 진행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2023년에는 약 163만가구로 전체 414만가구의 39.3%를 차지할 정도로, 서울시 1인가구 수는 매년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외로움 없는 서울'을 기조로 1인가구 지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다른 세대에 비해 정책적 지원이 부족했던 중장년(40~67세)에 대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유엔 '세계 행복 보고서 2025'는 식사 공유가 소득·취업 상태 못지않게 행복과 직결되는 요소라고 진단합니다. '혼밥'이 많은 1인가구, 특히 외로움·고독사 위험이 높은 세대인 중장년에 대한 정책 필요성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중장년 1인가구의 고립·은둔을 해소하기 위해 '혼밥탈출'이란 공동 식사 프로그램을 신규 진행 중입니다.
<뉴스토마토>는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이음마루에서 열린 동대문구 1인가구지원센터의 '동일이의 식사메이트' 사업을 참관했습니다. 현장에 모인 중장년 1인가구 8명은 혼자 살며 터득한 살림 요령을 발표하며 화기애애하게 교류했습니다. 이어 서울한방진흥센터에서 2인 1조로 족욕을 체험했는데, 참여자들은 체험 동안 스마트폰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을 만큼 단짝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했습니다. 소셜다이닝을 함께하며 동네 맛집 등 일상적인 이야기도 주고 받았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들은 자연스레 말벗으로 참여해 참여자들의 네트워킹을 도왔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인근 식당에서 '동일이의 식사메이트' 사업 참여자들이 소셜다이닝을 즐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취재진을 만난 참여자 남효식(63)씨는 "외환위기(IMF) 때 사업이 직격탄을 맞은 이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삶의 의미를 못 찾고 관짝 같은 고시원에서 매일같이 소주를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끼니도 일정치 않게 라면 하나 먹는 게 전부였고, 대부분은 우울해서 굶었다. 방 안에서 TV와 스마트폰에만 매몰되다 보니까 정신질환도 앓았다"고 말했습니다.
남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민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수급자 자격을 얻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몇년간 1인가구지원센터를 통해 고립감과 외로움도 해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는 자존감이 생기고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게 됐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도 가고, 잘 씻고, 빨래와 청소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상을 살고 있다. 삶에 영구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를 비롯한 참여자들의 성격이 밝아지고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으며 삶이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씨는 좋은 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겨 1인가구 지원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다른 참여자를 돕고 있습니다. 사업을 통해 알게 된 조현병 및 우울증 환자, 자살미수자 등 동료 시민들의 안부를 특별히 챙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겁니다. 정책이 참여자뿐 아니라 주변의 취약계층까지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었습니다.
남씨는 동료 중장년 1인가구들을 향해 "만약 상황이 어렵다면, 먼저 부끄러움 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 주민센터와 담당 사회복지사가 당신을 발굴해줄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는 데에 겁을 내지 않길 바란다. 현재의 고립과 외로움에 안주하지 말고 밥을 잘 먹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그래야 바뀔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이음마루의 모습, 동대문구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참여자들은 정책의 개선점도 알려왔습니다. 남씨는 "복지기관이 연초마다 정부로부터 가이드와 예산을 기다리는 동안 정책 휴지기를 가지는데, 이때 2~4달 정도 공백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때 참여자들이 집 밖에 나올 일이 없어 다시 고립감과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며 "가급적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해 서울시가 '약자와의 동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써줘야 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한 "연차가 높지 않은 사회복지사 3명이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모두 퇴사한 적이 있었다. 임금 등 처우가 좋지 않은데 일부 참여자의 악성 민원까지 겹치는 등 업무 강도가 높았던 탓이다. 정책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사회복지사들의 장기근속을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 필수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현강 서울시 1인가구정책팀장은 "정책 휴지기 문제를 검토해서 공백을 줄여 나가겠다. 휴지기에도 1인가구지원센터 등 대상자들을 위한 장소가 개방돼 있으니 이용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김 팀장은 "서울시 복지 종사자의 급여는 가이드에 따라 동일하다. 하지만 처우 개선을 검토해서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특이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멘토링 등의 사업을 진행할 때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1인가구 참여자들도 사업 참여 예절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올해는 정리 수납 컨설팅 등 중장년 중심으로 1인가구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후에는 세대 및 지역별 수요 맞춤형 지원을 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진다. 내년에 실태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며, 내후년에는 5개년 계획을 세운다"고 알려왔습니다.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