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국내 최대 노동조합(노조)인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올해 사측과의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주 4.5일제' 근무 도입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세울 예정입니다. 특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장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 받기 위한 요구입니다. 조기 대선에 나선 정치권에서도 공약으로 주 4.5일제가 거론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현대자동차 노사가 울산공장에서 임금협상에 앞서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다음달 열릴 올해 임단협 테이블에 주 4.5일제를 안건으로 올릴 계획입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는 각각 7만명과 3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보유한 노조로 이들의 임단협 결과는 한국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안건이 제안될 경우 자연스레 업계 전반에 이슈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달 기아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주 4.5일제로 가는 현실적 다리이자 변화의 첫 단계”라며 “올해 임단협에서 4.5일제를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화두를 던졌습니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사측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근무시간에 1시간을 추가로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4시간 근무하는 방식의 주4.5일제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총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을 유지하는 형태지만 사측과 입장이 갈려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기아 노조가 주 4.5일제를 의제로 다시 제기한 것입니다.
노조의 주 4.5일제 요구 배경에는 글로벌 친환경차 수요 증가와 수출 물량 확대에 따른 생산 부담이라는 요인에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연간 210만대 이상에 달하는 차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잦은 추가 업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근무시간 유연화를 통해 ‘워라벨’을 보장받기 위함입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52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차량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정치권에서도 다음달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근로시간 단축과 근무시간 유연화를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면서, 노조의 주 4.5일제 요구에 한층 힘이 실릴 전망입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서로 다른 방향의 주 4.5일제를 제시했지만, 근무 유연화 측면에서는 결이 같습니다.
국민의힘이 꺼내 든 주 4.5일제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와 가깝습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 일찍 퇴근하는 방식입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은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근무하자는 취지로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없습니다.
반면 이 후보는 2030년까지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로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일제’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입니다.
전문가들도 주 4.5일제를 찬성하는 분위기입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 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유연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특근 시간 등 전체적인 그림만 그려 준다면 충분히 글로벌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하락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차는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와 중형 SUV 투싼 등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매주 특근까지 시행 중입니다. 한국GM·KGM·르노코리아 등 중견 3사는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공정과 생산 인력이 부족해 주 4.5일제 근무는 부담이라는 입장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트럼프의 관세 정책 등 불확실성 속에서 생산성 향상이 전제돼야 주 4.5일제 도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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