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추진 중인 ‘RE100’ 캠페인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용을 달성하자는 자발적인 캠페인입니다. 구글, 애플, 나이키 등을 비롯해 수백 개 글로벌 기업이 이미 RE100을 선언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들과 거래하는 기업들에게 RE100 충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뉴노멀’에 가깝습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대표적 기업들이 참여를 선언한 상태이지만, 인프라 부족과 재생에너지 정책 변화 등으로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네 차례에 걸쳐 각 산업부문별 RE100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은 과제를 짚어봅니다._편집자
[뉴스토마토 박창욱·이명신 기자] “정책적 뒷받침 없으면 철강·석화 업계에서 RE100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국내 경제사정에 밝은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이같이 말했습니다.
RE100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은지 오래지만, 여전히 철강·석화 업계 이행률은 최저 수준입니다. 국내에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해 에너지 지속성을 내기 어렵고, RE100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인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부담이 커 현실적으로 RE100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업계는 지적합니다. RE100 이행을 요구하는 국가와 기업이 많아지면서 재생에너지 조달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이 삭감됐거나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뉴시스)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 ‘9%’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세계 전기 리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9%로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023년 한국의 전력 생산량인 58만8047기가와트시(GWh)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5만2924GWh입니다. 포스코의 2023년 전력 소비량은 1083만4095기가줄(GJ)인데 이를 맞게 변환하면 3009GWh입니다. 2023년 기준 롯데케미칼의 전력 소비량은 6933GWh입니다. 양사 전력 소비량을 합치면 9942GWh로, 이미 전체 재생에너지 중 20% 가량을 차지합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생산 자체가 부족하니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철강·석화 기업들은 RE100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업계에선 태양광 설비 도입을 추진하는 등 자가 발전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RE100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REC를 구입하려고 해도 금액이 부담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REC란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구매하는 인증서로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면 RE100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철강·석화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10%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2023년 기준으로 동국제강이 에너지 총사용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 10%를 달성하려면 255만4306기가줄(GJ)을 채워야 합니다. 같은 해 REC 평균가격은 1메가와트시(MWh)당 7만2843원입니다. 단순 계산해도 516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진=뉴시스)
재생에너지의 현실적 문제도 있습니다.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철강·석화업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하다”며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변동성 등이 심해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재생에너지 특성상 외부 요인에 의해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불규칙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역행한 윤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이행에 대한 요구는 본격화되고 있지만, 윤 정부 임기 내내 재생에너지 정책은 ‘역주행’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제조 수출기업의 RE100 대응 실태와 과제’에 따르면, 국내 수출 제조기업 610개 중 16.9%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석유화학은 17.9%, 철강은 16.1%로 집계됐습니다. 또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받은 103개 기업 중 ‘2025년 이후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고 요구받은 비율은 41.7%였습니다.
국내 기업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지만, 그럼에도 윤 정부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전력망 여건을 이유로 강원, 경북, 제주, 그리고 신안, 군산 등 호남 일부 지역에서 이미 재생에너지 허가 중단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호남·제주지역의 신규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은 오는 2032년까지 전력계통망 접속을 조건으로만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변경됐습니다. 사실상 태양광·풍력 신규사업 허가를 막은 셈입니다.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도 크게 줄었습니다. 2023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24년 원전·재생에너지 지원예산 현황’을 보면, 2023년 기준 1조1092억원인 재생에너지 지원예산이 2024년 6330억원으로 42.9%나 줄었습니다. 특히 전체 재생에너지 예산의 78.7%를 차지하는 보조금 예산(재생에너지 신규설비를 지원)이 크게 줄었습니다. R&D분야 예산도 268억9400만원 감액됐습니다. 김해동 계명대학교 지구환경공학과 교수는 “윤 정부서 재생에너지 사업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 직전까지 돌아갔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재생에너지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 지원 필요”
업계에선 철강·석화 기업의 RE100 시행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사격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REC 구매 비용이 천문학적이다”며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정착될 때까지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내의 ‘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일례로 중국의 경우 친환경 전기가 산업용 전기보다 싸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한국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쉽지 않은 구조”라며 “(RE100)규제가 더 강해진다면 친환경 전기를 찾아 떠나는 산업 공동화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토로했습니다.
박창욱·이명신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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