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국내 최초 디지털 전업 보험사로 기대를 모았던 캐롯손해보험이 대대적인 자금 투입에도 버티지 못하고 짧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000880)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088350) 사장이 주도한 디지털 보험 실험이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 캐롯손보는 모회사
한화손해보험(000370)에 흡수합병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습니다. 당초 기업공개(IPO)까지 목표로 했던 캐롯손보의 독립 경영은 결국 6년 만에 막을 내리는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캐롯, 포트폴리오 다각화 실패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캐롯손보의 자산·인력 이관을 포함한 조직 재편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지만, 사실상 브랜드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구조조정 가능성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2019년 출범 당시 캐롯손보는 '국내 1호 디지털 보험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동원 사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관여했고, 차세대 금융 계열 후계자로서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에서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캐롯손보는 오프라인 지점 없이 온라인 기반으로만 영업하며, 주행거리 기반 자동차보험 등 새로운 형태의 상품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하지만 캐롯손보는 출범 초기부터 수익 구조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자동차보험 중심의 사업 모델은 이미 포화돼 가격 경쟁에 직면했고, 낮은 보험료와 높은 손해율이 반복되며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주행거리 측정 장치인 '캐롯 플러그'의 보급에도 한계가 있었고, 기술적 차별성만으로 시장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출범 이듬해인 2020년 381억원의 적자를 시작으로, 2023년엔 적자 폭이 760억원까지 확대됐습니다. 지난해에는 약 3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도 단행했지만, 실적 개선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누계 적자도 3285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일각에선 "증자금마저 말아먹은 셈"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습니다.
캐롯손보는 자동차보험 편중에서 벗어나기 위해 헬스케어·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등 다양한 비보험 기반 사업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실질적인 고객 접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디지털 전환'이란 기치만 남았다는 평가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화손해보험. (사진=한화손해보험)
IPO 좌초에 리더십 타격
실적 부진과 함께 IPO 계획도 사실상 좌초됐습니다. 캐롯손보는 애초 김 사장이 이끄는 금융 계열 경영의 성과물이자 그룹의 디지털 금융 전략의 상징으로 평가받았지만, 시장 신뢰 확보에 실패하며 상장 추진이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는 캐롯손보 브랜드를 정리하고 남은 조직을 한화손보에 흡수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추가 유상증자 등의 방안도 함께 검토되고 있습니다. 캐롯손보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지급여력비율(킥스·K-ICS) 개선을 위해 '적기 경영 정상화 조치'를 요구받았기 때문에 증자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말 기준 킥스 비율이 156.24%로 전분기 대비 33.2%p 하락했습니다.
따라서 김 사장의 리더십에도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그룹은 김 사장을 금융 계열 후계자로 낙점하고 주요 계열사인 한화생명의 경영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캐롯손보는 한화생명의 손자회사이자 김 사장이 출범부터 주도한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업 실패를 넘어 리더십 자체에 대한 회의로 번지고 있습니다.
한화생명의 킥스도 금융당국이 권고하는 150%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3.8%입니다. 나머지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본성 증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 사장이 디지털 전환과 해외 진출 등 장기 전략에 주력해왔지만 자본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한화손해보험은 이날 "당사는 캐롯손해보험과 관련하여 매각을 제외한 합병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나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습니다.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지난 1월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 마련된 한화 오피스에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생명)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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