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윤석열씨가 내란 특검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가운데, 과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등에서 한 발언이 사실과 다르거나 수사 진술과 상충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씨의 주장에 보조를 맞춰온 인사들도 수사 과정에서 말을 바꾸면서, 진술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윤씨는 법적 대응과 수사 방해 논란 속에서도 '계엄은 정당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요 증언에선 스스로 발언을 뒤집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나 이상민 전 행전안전부 장관 등 공모 의혹을 받는 인사들까지 말을 바꾸며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 2월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을 하고 있다.(사진=헌법재판소)
윤씨의 진술 번복이 처음 공론화된 계기는 헌재 탄핵심판 과정입니다. 2월13일 윤씨는 자신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사이의 접촉 여부를 묻는 헌법재판관의 질문에 "딱 한 번 식사한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홍 전 차장이 "총 6회 접촉했다"고 진술하자, 윤씨는 재판 도중 "기억이 착오였다"며 사실상 기존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헌재 심판이라는 공식 절차에서조차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셈입니다.
공천 개입 의혹을 둘러싼 해명도 사실과 엇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취 파일이 일부 공개됐을 때 "2022년 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고 있었다"며 "윤상현 의원이 공관위원장인지도 몰랐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시사IN>이 올해 2월 공개한 통화 녹취 파일에 따르면, 윤씨는 2022년 5월9일 명태균씨와의 통화에서 "상현이(윤상현 의원)한테 (김영선 공천을) 내가 한 번 더 얘기를 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윤상현 의원이 공관위원장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정황으로, 기존 해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발언은 윤씨가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어, 해명의 진정성과 발언의 신빙성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윤씨가 특정 후보를 지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육성이 담긴 파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언급한 배경은 결국 진술 신빙성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윤씨는 그간 "내가 지시한 적 없다", "보고받지 않았다"는 발언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지만, 수사 과정에서는 지시 여부나 보고 정황을 증언한 인사들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 간극은 핵심 공범들의 진술 변화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뉴시스)
윤씨의 공천 개입 정황과 관련해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인물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윤 의원은 지난해 말 공천 개입 보도 직후 "윤씨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27일 특검 조사에서는 관련 통화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의원의 태도 변화는 단순한 기억 착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윤 의원이 돌연 입장을 바꾼 가운데 특검은 통화 시점과 내용, 녹취 파일 존재 여부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민 전 장관의 경우에는 위증 혐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내란 특검이 28일 청구한 이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는 그가 지난해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한 증언이 허위였다고 판단한 대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변론에서 "전기나 물을 끊으려 한 적이 없고, 윤씨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으나, 특검은 이를 부정하는 정황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핵심 증거는 당시 청와대 상황실 내부 폐쇄회로TV(CCTV) 영상입니다. 특검은 이 영상에서 이 전 장관이 단전·단수 지시가 포함된 문건을 들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대화하는 장면을 확인한 걸로 파악됩니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이 단순한 '지시 전달자'가 아니라 계엄법상 주무장관으로서 실질적 책임을 질 위치에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장우성 내란특검보는 29일 서울고검에서 기자들과 만나 "계엄법상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주무장관은 국방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라며 "그럼 (주무장관으로서 이 전 장관의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특검은 이 전 장관의 지시가 이영팔 서울소방재난본부장 등에게 전달된 이상, 직권남용죄는 '미수'가 아니라 '기수'로 성립한다는 판단입니다. 내란 특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이므로 두 가지 구성 요건이 다 충족되는데, 일단은 '기수'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지시 권한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특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장 특검보는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경찰이 뭘 구체적으로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이야기"라고 반박했습니다.
31일 열릴 이 전 장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 결과는 향후 수사 방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내란 특검은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있었던 회동과 관련해선 이 전 장관의 범죄 사실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전 장관은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만나 2차 계엄 또는 계엄 수습 방안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박지영 내란특검보는 이날 서울고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란 종료 이후에는 포섭이 안 될 것이고 어떤 말이 오갔는지, 친목 모임이었는지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 단계에선 확인이 안 됐다"며 "내란 이후 안가 회동 자체는 범죄 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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