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사무 담당 법원은 개인정보처리자 아니야
2025-04-07 15:49:51 2025-04-07 15:49:51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정보사회의 고도화와 개인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증대하면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도 보편화됐습니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원칙과 처리기준이 마련되지 못해 개인정보 유출,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2011년 9월30일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 제7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돌려보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형사사건 재판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법원에 재판기록 열람, 복사 및 출력 신청을 했습니다. 피고인은 법원으로부터 함께 기소된 A씨의 성명, 생년월일, 전과 사실 등이 기재된 다른 사건의 판결문 사본을 제공받았고, 각 판결문 사본을 피고인과 A씨 사이에 민사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A씨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과 다른 용도로 이용한 행위에 해당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겁니다. 1심은 피고인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고 원심도 1심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을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 제2호, 제19조 위반죄로 기소했습니다. 동법 제19조는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사람은 정보주체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거나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피고인이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경우에 성립하는 겁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정의하는 ‘개인정보처리자’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파일을 운용하기 위하여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을 말합니다. ‘개인정보파일’의 정의는 개인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하거나 구성한 개인정보의 집합물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법원의 업무가 사법부 고유의 업무인 재판사무와 법원의 행정사무로 구별된다고 봤습니다. 재판사무의 주체로서 법원이 민사·형사·행정 등 재판에서 개별 사건마다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제출 등을 통해 심리를 진행한 다음 공권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쟁송을 해결하거나 국가형벌권을 실현하기 위한 재판 과정에서 증거나 서면의 일부 등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하더라도, 다수의 개인정보 그 자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하거나 구성한 집합물인 개인정보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피고인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소송계속 중의 관계 서류나 증거물을 열람 및 복사하는 것은 피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재판사무를 담당하는 법원이 피고인의 신청에 따라 재판기록을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했어도 ‘개인정보처리자’로서 개인정보를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사건 진행 중 기록을 열람 및 복사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 사건의 기록에 포함됐던 공동 피고인 A씨의 다른 형사사건 판결문이 문제가 된 겁니다. 대법원은 A씨의 전과가 기재된 판결문을 A씨와 진행하던 민사소송에 관한 피고인의 탄원서에 첨부해 제출한 행위가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한 것인지 판단하지 않고,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사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정의하는 개인정보란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 △위 정보 중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명처리해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가명정보)를 말합니다.
 
위와 같은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개인정보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개인정보를 악용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대규모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납니다. 개인정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개인정보의 처리와 보호의 기준이 되는 개인정보보호법은 필수적입니다.
 
다만 규정이 모호해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고 처벌 필요성이 없는 행위까지 처벌하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판결과 같이 개인정보처리자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등 현행법하에서는 대법원의 명확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나 상고가 돼야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주축으로 현실에 맞는 지속적인 법령 정비를 통해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규제와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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