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형법 제328조의 친족상도례는 강도와 손괴죄를 제외한 친족 사이에 일어난 대부분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하거나 친고죄로 규정합니다. 가정 내부의 문제에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2024년 6월27일 친족간 재산범죄의 경우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위 조항의 적용이 중지됐습니다.
대법원 전경.(사진=뉴스토마토)
최근 대법원이 처제의 카드를 이용해 현금서비스를 받는 등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 컴퓨터등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친족상도례를 적용한 원심판결을 깨고 돌려보냈습니다. 피고인은 함께 살던 처제의 인적사항, 신용카드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던 것을 기화로 처제의 신용카드로 대금결제 또는 현금서비스를 신청해 2021년부터 2022년까지 7700여만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변경해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1심은 피고인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2심은 동거친족인 처제의 신용카드를 이용한 컴퓨터사용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경우 친족상도례에 따라 형을 면제해야 한다고 보고 징역 1년 5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에서의 쟁점은 △타인 명의 신용카드를 이용한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피해자 △형사소송규칙 제141조에 따른 검사에 대한 석명권 행사의 필요성 △친족상도례 규정에 관한 헌법불합치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 등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검사의 공소장과 첨부된 범죄일람표에는 피해자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카드사나 금융기관 등을 피해자로 보고 기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항에 관해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면 검사에게 석명을 구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형사소송규칙 제141조는 재판장은 소송관계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사실상과 법률상의 사항에 관해 석명을 구하거나 입증을 촉구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형법 제328조 제1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적용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일어난 일이어서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될 수 있는지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위헌결정의 예외적 소급 적용은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실체법에만 해당하고 처벌을 면제하는 규정의 위헌결정을 소급 적용하면 오히려 과거에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봐 친족상도례 규정은 헌법불합치결정이 선고된 날부터 효력을 잃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아직 친족상도례가 적용된다는 겁니다.
헌재는 위 친족상도례 규정의 헌법불합치결정에서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 발생하는 수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상 특례의 필요성은 긍정했습니다. 하지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넓은 범위의 친족간 관계를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면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 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재산범죄의 불법성이 일반적으로 경미해 수인 가능하거나 피해 회복 및 친족관계의 복원이 쉽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피해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된 경우 친족상도례가 가족 내 취약한 지위의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헌재는 개정 시한을 2025년 12월31일로 정했습니다. 이후에는 조항의 효력이 상실됩니다. 국회는 개정 시한 전까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위 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향후 개정 내용에 따라 가족 내 재산범죄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개입 범위가 달라지고 가족 간 재산 문제의 해결 방식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족관계와 피해의 정도 및 가족 간 신뢰와 유대관계의 회복 가능성 등을 고려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의사표시를 소추조건으로 하는 방법 △친족상도례의 인적 적용 범위를 줄이는 방법 △범죄 유정에 따라 세부적인 적용 기준을 정하는 방법 △친족상도례를 폐지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대안 중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국회가 속히 정상화돼 개정 시한 전까지 바람직한 대안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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