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1979년 10월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습니다. 대통령의 부재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자 이튿날인 10월27일부터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를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그해 12월12일 군사반란 일으키고 군부를 장악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입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그러자 전씨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등을 강압해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수반한 계엄포고를 통해 정당 및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국회 폐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조치까지 이뤄졌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전씨는 비상계엄을 이용한 5·17내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겁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로부터 약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3일 우리나라 국민은 또다시 정치적 목적의 비상계엄 선포를 목격하게 됐습니다. 윤석열씨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으면서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선포할 수 있도록 한 계엄을 여소야대의 정치적 곤란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겁니다. 특히 포고령 제1호를 통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도록 하고 실제로 국회에 군병력을 투입해 침투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계엄을 선포한 사실을 통고해야 할 국회를 봉쇄해 국회가 계엄해제요구를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장기간 계엄을 유지할 목적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전씨의 군사반란과 내란 행위는 전씨가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지 8년만에 구속 기소돼 무기징역이 확정되면서 단죄됐습니다. 당시 전씨는 군사반란과 내란의 과정을 거쳐 확고히 정권을 장악하고 헌법개정절차 등을 통해 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새로운 법질서 아래에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우리나라는 제헌헌법 이래로 한결같이 헌법질서를 유지해오고 있으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해 헌법을 개정하고 통치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으므로 전씨의 군사반란과 내란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2021년 8월9일 전두환씨가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받은 뒤 부축을 받으며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을 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헌법기관과 다른 국가기관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되므로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윤씨도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써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본질적 한계는 엄격히 준수돼야 하고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계엄 선포행위에 대해 그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윤씨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계엄 선포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관위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 등 다섯 가지였습니다. 헌재는 모든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위 다섯 가지 행위가 모두 헌법 및 법률에 위반한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대통령은 평상시에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권한을 보유하게 되므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성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습니다. 정치적 목적의 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으로 이미 국민의 기본권을 포괄적·전면적으로 침해해 법 위반의 정도가 엄중하고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매우 크다고 본 겁니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씨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헌재는 윤씨가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후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부정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므로 윤씨의 법 위반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헌재는 계엄 선포와 함께 일어난 일련의 모든 행위가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므로 윤씨를 파면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최초의 계엄은 1948년 여순사건으로 인해 선포됐습니다. 이후 이번 12·3사태까지 17차례 계엄이 선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6·25 전쟁을 제외하고는 주로 독재자가 정권을 장악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습니다. 이승만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한 4·19혁명이 일어나자 정부는 1960년 4월19일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1961년 5월16일에는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5·16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1972년 10월17일에는 유신체제로 이행하면서 그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전두환씨가 비상계엄 상황을 이용해 군사반란과 내란을 저지른 것까지 국가긴급권의 심각한 남용으로 인해 국민들이 희생당해 온 겁니다. 이번 윤씨에 대한 탄핵을 계기로 앞으로는 절대로 국가긴급권의 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정비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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