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김유정 기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가 기약 없이 길어지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까지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31일 오전 추경 내용과 본회의 일정 조율을 위해 만난 여야 원내대표는 시작부터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두고 대립했습니다. 제대로 된 추경 논의는 꺼내지도 못했는데요. 결국 이날 오후 2차·3차 회동에 돌입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습니다. 앞선 예비비 논란까지 겹쳐 추경에 얽힌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31일 오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열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 권 원내대표, 우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사진=뉴시스)
여 "정부 추경 통과 시급 …야 "10조 추경안, '쭉정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을 놓고 논의 테이블을 마련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의 '10조 추경안'은 "알맹이 없는 쭉정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에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고, 그것도 '여야가 취지에 동의하면 그때 가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경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정부의 추경안을 최우선으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추경은 여야 간에 쟁점이 없고 반드시 시급히 처리해야 될 예산만을 담았다"며 "(정부가 제안한) 추경을 먼저 시급하게 통과시킨 다음에 여당과 야당이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국민께서 안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추경을 두고 대립하던 여야 논쟁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번졌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한덕수 총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취사선택할 권한이 없음에도 자신에 대한 결정은 따르면서 마은혁을 임명하라는 결정은 아직까지 주저한다"며 마 후보자 임명과 윤씨 파면을 촉구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국회가 탄핵 소추를 했다고 해서 국회 의견대로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탄핵 심판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지위를 박탈하는 그런 결정이다. 이러한 결정은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응수했습니다.
추경안 처리 방법을 놓고도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민주당은 상임위원회별 심사를 건너뛴 후 본회의 처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관행대로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처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여야는 결국 이날 오후 다시 열린 2차·3차 회동에서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본회의 일정 조율에도 실패했습니다.
추경 규모 합의해도…의결까진 '산 넘어 산'
예비비를 둘러싼 논쟁도 추경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입니다. 여야는 국민의힘이 제안한 '예비비 추경'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올해 예비비는 2조4000억원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4조8000억원의 절반인데요. 재난 등 대응을 목적으로 편성한 예비비지난해 거대 야당 주도로 사상 첫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킨 결과입니다. 재난 등 대응을 목적으로 편성한 예비비가 1조6000억원, 일반 예비비가 8000억원 줄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삭감한 예비비를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민의힘이 추산한 추경 규모는 △민생회복 11조9500억원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2조원 △예비비 복원 2조원을 포함해 공개되지 않은 경제성장 관련 예산까지 약 20조원에 달합니다.
반면 민주당은 이미 편성된 예비비가 아직 쓰이지 않았고, 부처별 가용 예산이 남아있다는 점을 들며 예비비 추경 요구에 부정적입니다. 부처별로 흩어진 재해재난대책비 9200억원을 우선 활용하고, 예비비 대신 '산불 대책 예산'을 증액하자는 상황입니다.
예비비 증액 추경은 탄핵 정국과도 연결됐습니다. 윤석열씨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감액 예산안의 단독 처리 등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국민의힘이 예비비 증액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산불 사태를 통해 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부작용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계엄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야당 책임론'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계엄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예비비 증액을 활용한다고 봅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최상목 당시 부총리에게 계엄 관련 문건을 건넸는데, 첫 번째 항목이 '예비비를 충분히 확보할 것'이었다"며 "이 예비비 확보는 내란에 소요되는 비용 확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민의힘이 예비비 증액을 주장하는 것은 내란을 위한 예산 확보를 뒷받침하고, 국회가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김유정 기자 pyun979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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