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또 생존? 위기의 ‘21세기 술탄’
2025-03-27 15:01:54 2025-03-27 15:01:54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던 레제프 타예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집권 20년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야권 대권주자를 구금했다가 반발을 산 것인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 규모는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위대를 체포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튀르키예의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에르도안이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어떻게 22년 넘게 집권할 수 있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대학생들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구속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논란의 인물 에르도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22년째 집권하고 있습니다. 2003년 총리로 취임하면서 집권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대통령에 취임해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죠. 르완다의 폴 카가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처럼 제왕적 위치에서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튀르키예는 대통령 중임제를 시행 중인데요. 중임 대통령이 임기 도중 사퇴할 경우 다시 대통령 후보 자격이 주어진다고 규정합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악용해 정권을 연장하고 있죠. 이론상 그는 2033년까지도 집권할 수 있습니다.
 
탄압 반복하는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야권 인사이자 자신의 정적인 에크렘 이마모을루(54) 이스탄불 시장을 구금했는데요. 이는 오히려 이마모을루를 대권주자로 발돋움시켰죠. 이마모을루를 지지하는 시위는 오히려 격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시위금지령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정부는 언론 역시 탄압하고 있는데요. 2024년 기준 튀르키예의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158위로, 지난해 논란의 대선을 치른 베네수엘라(156위)보다도 순위가 낮습니다. 자신을 비판할 경우 언론이 아닌 개인이어도 대통령모욕죄로 소송을 걸어대고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크게 탄압당한 이들은 역시 쿠르드족입니다. 시리아 내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틈틈이 쿠르드족에 대한 공세를 퍼붓고 있죠. 이마모을루 시장에 대한 구금 혐의도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협력하고 지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의 역사
 
그렇다고 에르도안 정권이 다른 데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경제정책 실패가 있는데요. 사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초반 튀르키에 국내총생산(GDP)은 10년여 만에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엄청난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2020년도에는 앞선 10년의 치적이 다 잊힐 정도의 큰 실패를 맞았는데요. 2022년에는 물가상승률이 85%까지 치솟을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었고 리라화 가치는 불과 몇 년 만에 폭락했죠.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은 고금리 탓’이라는 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주장까지 튀어나왔고요. 현재까지도 달러당 리라가 40리라를 돌파하는 등 경제정책 실패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3년 튀르키예와 시리아 누적 사망자가 5만명을 넘긴 대지진 때도 에르도안 정권은 무기력했는데요. 제때 군을 투입하지 않아 신속한 대응이 늦어졌고, 일부 지역은 구조대가 며칠이나 도착하지 않아 사망자가 급증했죠. 부실공사를 한 건물을 사실상 정부가 눈감아주는 ‘도시계획 구역 사면법’도 사태 확산을 키웠다고 지적받았고요. 결과적으로 재난 준비도, 초기 대응도, 사후 구호 활동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거듭된 중앙집권화를 통해 강력한 권력을 구축해놓고 정작 재난상황에선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2023년 12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39차 이슬람협력기구(COMCEC) 경제상업협력위원회 회의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에르도안, 어떻게 이겨왔나
 
숱한 논란들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년이 넘는 집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기의 성공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긴 기간인데요. 종신에 가까운 집권이 가능한 데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가 한몫했습니다. 사실 튀르키예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인데요.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세워진 공화정은 적극적인 세속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1300년 이상 지속된 칼리파 제도를 없애고 히잡을 규제하는 등 이슬람주의와 거릴 두고 서구화에 힘썼죠. 이를 바탕으로 나라는 발전했습니다.
문제는 정부 중심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국민 대다수가 믿는 이슬람주의와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튀르키예가 민주화하면서 성장세는 가팔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이슬람주의의 사회진출도 많아졌고,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계 진출로도 이어진 것이죠.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이슬람주의를 적극적으로 표방했고,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됐습니다.
민족주의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쿠르드족을 공적으로 몰아 지지세를 결집했고 야당 탄압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또 튀르키예인들이 가진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강한 튀르키예’라는 정체성을 강조했죠.
 
에르도안, 또 위기 넘길까
 
이처럼 에르도안 대통령은 견고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과연 이번 위기도 넘길 수 있을까요? 일단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도 희망적인 소식이 있는데요. 현재 국제 정세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편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우며,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면서 중동에서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죠.
다만 거듭된 탄압으로 인한 불만도 쌓이고 있습니다.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민심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 정의개발당은 수도 앙카라와 주요 도시 이스탄불을 내주는 등 참패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첫 패배인 셈입니다. 최근 야권 인사를 구금한 것도 민심에 불을 지폈고요. 과연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더 거친 압제를 이어갈까요? '21세기 술탄'의 운명에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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