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불경기에 가전 제품 판매액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신제품을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초기비용이 저렴한 매력이 결합돼 가전 구독제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이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가 구독 사업을 확대하는 모습입니다.
삼성 강남 직원이 고객들에게 갤럭시 S25 시리즈 'New 갤럭시 AI 구독클럽'을 안내하는 모습(사진=삼성전자)
11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가전제품 총 판매액(잠정치)은 지난해 11월 2조5758억원에서 12월 2조2746억원, 올 1월 2조1861억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세입니다. 이는 전년 1월 2조5457억원 대비 약 14% 하락한 수치입니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가전 시장에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엄혹한 가전 시장에서 구독 경제는 가전업계의 주요 수입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전 구독제란 소비자가 월 구독료를 내며 가전 제품을 사용하는 서비스 형태입니다. 무상 A/S 서비스에 전문가의 주기적 관리까지 더해지며, 제품 구매 초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LG전자는 정수기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구독 서비스를 2022년 일반 가전 제품에 확산한 후 빠르게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LG전자는 지난 1월 진행한 2024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가전 구독 사업의 한국 매출은 자사 가전 매출액의 27% 비중을 차지한다”며 “누적 매출 1조6천억원을 달성해 전년 대비 50%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발 늦게 구독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후발주자임에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판매된 올레드(OLED)와 네오 큐엘이디(NEO QLED) TV 가운데 구독제 비중이 50%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1년 사용 후 기기 반납 시 50% 잔존가를 보장하는 ‘New 갤럭시 AI 구독클럽’을 론칭해 신제품 갤럭시 S25 시리즈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S25 사전 예약자 5명 중 1명이 구독제에 가입하였고, 국내 최단기간에 100만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구독제는 가전업체 입장에서도 일석이조입니다. 생활가전 사업은 계절적 특성으로 하반기에 실적이 부진한 ‘상고하저’ 흐름을 보입니다. 매출이 주기별로 달라지면 회사의 기업 가치가 낮아지는데 구독제를 통해서 매출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구독제를 통해 프리미엄 제품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낮은 수준의 서비스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소비의 비가역성'도 마케팅 포인트입니다. 향후 동급의 가전을 재구매하도록 하는 소비심리가 작용해 보급률을 확대할 수 있고, 이를 통한 충성고객 유치 효과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총 구독료가 제품 판매가보다 높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장기적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휴카드별 월 이용 실적을 통해 할인을 받는 방식이 있고, 가전 업체들이 소비자 부담을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비용차이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구독 모델을 본격 확장하겠다는 입장입니다. LG전자는 올해 가전 구독 사업의 성장률 목표를 두자릿수로 정했습니다. 2030년까지 가전 구독 매출을 6조원까지 늘리겠다고도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는 오는 4월 출시 예정인 인공지능 캠패니언 로봇 ‘볼리’도 구독 서비스에 포함하겠다고 알렸습니다. 글로벌 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구독경제 시장은 2020년 804조원에서 2025년 1천200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구독제에 대한 소비자의 허들이 낮아졌고, 서비스 사용자가 늘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현해 인프라가 좋아지고 있다”면서 “하루가 다르게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탑재한 가전 제품에 대한 교체 희망 주기가 짧아지며 구독제가 소비자에게 더 큰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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