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물러났지만…메리츠화재 이사회, 여전히 '거수기'
작년 11번 이사회…안건 반대 '0'
대표의 이사회 의장 겸직 지속돼
명분은 '효율성'…자체 평가 '만점'
2025-03-05 14:11:20 2025-03-06 10:07:20
 
[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이사회의 '거수기 논란'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3년 11월 물러난 뒤 김중현 대표 체제가 들어섰지만, 이사회 독립성 침해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금융당국 '경영 유의' 이후 변화 없어
 
(그래픽=뉴스토마토)
 
5일 메리츠화재가 전날 홈페이지에 공시한 '2024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메리츠화재의 4번 정기 이사회와 7번 임시 이사회에 부쳐진 29개 안건 중 반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사회 개최 안건 가운데는 △재무제표 승인 △사업 계획·예산(안) 수립 △주주총회 개최 결정 △계열사 간 거래 승인 등 경영과 관련한 주요 사항이 수두룩했습니다. 하지만 이사회 소속인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3명 모두 속전속결로 안건을 처리했습니다.
 
11번 이사회에서 보고 안건은 총 25건이었는데 모두 특이사항 없이 보고가 완료됐습니다. 선임 사외이사 권한으로 소집된 사외이사회 개최 내용도 없었습니다.
 
메리츠화재 역대 최연소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중현 대표 역시 김용범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이사회 의장을 겸직했습니다. 회사 대표가 의장까지 맡을 경우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해야 하는 이사회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이러한 행보를 이어간 겁니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9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이사회 독립성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경영 유의 18건, 개선 16건을 통보받은 바 있습니다. 김용범 부회장이 지난 2015년부터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9년 가까이 메리츠화재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동안 총 11회 걸쳐 메리츠화재와 지주 간 거래에 대해 의결권 직접 행사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메리츠화재 이사회 운영과 관련해 독립성 및 실효성이 저해되고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 감독 역할이 미흡한 실정이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아울러 이사회 의결안건에 대한 이사 발언, 문제 제기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사 기간 중 성현모 선임 사외이사가 사외이사회를 소집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사회 의결 시 사외이사가 안건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등 사외이사 업무 수행 실적과 역할이 부족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메리츠화재 측은 대표의 이사회 의장 겸직에 대해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배구조 보고서에서도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을 검토하는 업무 외에도 회의 소집과 의사 진행, 안건 및 절차에 대한 적정성과 적법성 검토, 업무 진행과 관련한 전문성과 신속한 의사결정 추진 등 이사회 운영과 관련한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이사회 의장에는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이사회는 판단했다"고 적시했습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사외이사 거수기 지적에 대해선 "대부분 기업이 같은 상황인 것으로 안다"며 "금감원 경영 유의가 제재 단계까지는 아니어서 조치가 의무적이진 않다"고 답했습니다.
 
지배구조법 맞춰 모양새만 갖춰
 
메리츠화재의 이사회 구성과 운영은 지난 2016년 8월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맞춰 모양새만 갖춘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 법 제13조 1항은 금융회사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 선임하도록 규정합니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에서 사유 공시, 선임 사외이사 선임 등의 조건하에 사외이사가 아닌 자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할 수 있다는 예외 원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메리츠화재뿐 아니라 비은행계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 금융사들에서 대표의 이사회 의장 겸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지난 2021년 3월부터 경영에 참여한 성현모 사외이사를 1년 뒤인 2022년 3월 선임 사외이사에 선임했습니다.
 
성 선임 사외이사는 메리츠화재에서 감사위원회·임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과 보수위원회·리스크 관리 위원회 위원도 함께 담당합니다. 지난해 1년 임기로 한 차례 재선임된 그는 이달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다시 한번 재선임 여부가 결정됩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은행계 금융지주의 경우 은행계 지주와 달리 오너(소유주) 영향력이 강해 총수 일가 영향을 받는 사내이사들이 이사회 의장으로 대부분 활동하고 있다"며 "이는 이사회 독립성과 경영진 견제 기능 저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금융기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떤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이사회 독립성 없이 오너 입맛대로만 경영이 이뤄지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며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사내이사의 예외적 이사회 의장 겸직 허용 조항이 이사회 독립성을 헤치는 허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메리츠화재는 사외이사 인원도 딱 3명으로,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12조 1항에서 명시한 최소 사외이사 기준만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3명에서 5명으로 사외이사 수를 늘린 DB손해보험을 비롯한 자산 규모 기준 대형 손해보험사 5곳(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중 가장 적은 수준입니다.
 
메리츠화재 측은 사외이사 인원에 대해서도 '효율성'을 언급했습니다. 상법 및 지배구조법상 필요한 최소 원수와 이사회 운영 효율성을 고려한 최대 원수를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서울시 강남구 강남 대로에 있는 메리츠금융그룹 사옥 전경. (사진=메리츠화재해상보험)
 
이사회 운영 자체 평가 '100점 만점'
 
메리츠화재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현재 이사회 구성과 운영 실태에 관해 긍정적으로 자체 평가를 내린 상태입니다. 지난달 12일부터 17일까지 6일간 사외이사 지원 부서인 인사총무파트에서 이사회 구성·운영에 관한 점검과 평가를 진행하고 이달 4일 제2회 임시이사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메리츠화재 이사회는 △이사 평가 60점 △간사 평가 20점 △참석률 20점 등 총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외이사 평가가 후했습니다. 성현모·김명애·한순구 사외이사 모두 "전문성, 충실성, 기여도 등에서 매수 우수"라고 평가돼 있습니다.
 
성 선임 사외이사가 사외이사 교육 프로그램 강화를 회사에 요청한 것과 사외이사 대상 사내 교육을 연간 2회 개최한 점 등을 두고는 "사외이사 권한과 역할 강화를 위해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사외이사 3명 모두 2년 이상 재임했기에 외부 평가 기관에 평가 의뢰할 수 있지만,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내부 평가만 실시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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