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캐나다 수입품에 대한 신규 관세 부과를 예고한대로 시행하면서 현지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국내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특히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와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체결로 무관세가 적용돼 매력적인 생산기지로 꼽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강행으로 한국 및 글로벌기업들이 속속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길 채비에 나서면서 ‘멕시코 엑소더스’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관세 시나리오를 놓고 대응법을 고심하던 차원이 아닌, 현실화된 ‘관세 전쟁’에서 실제로 움직여야 하는 시점인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4일(현지시각) 멕시코·캐나다·중국 등 3개국 수입품에 대한 신규 관세 부과를 예고대로 발효했습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 중국에 대해 추가로 10%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특히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과 무역협정을 통해 무관세 적용을 받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관세 부과를 강행했습니다.
이번 관세로 미국보다 생산 원가가 저렴한 멕시코에 진출한 뒤 북미 시장에 제품을 수출해 온 한국 기업들에 타격이 불가피 할 전망입니다. 특히 멕시코에는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등 400여개 기업이 북미 생산 거점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발간한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조치에 따른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에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대로 관세가 부과될 경우, 올해 한국의 총 수출은 지난해 대비 2억2000만달러(약 3211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특히 멕시코의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20.5%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의 대멕시코 수출도 9.1%로 가장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멕시코는 미국향(向)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아 중간재 수입·수요 감소가 우리 수출에 상대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현지 생산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도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신규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정된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대응 전략을 실행해 옮겨야 할 때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멕시코를 떠나 미국 현지 생산 강화를 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멕시코 '엑소더스'(탈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이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관세 인상이 본질적인 공급망 변화를 해야 하면 생산시설 이전 및 기존 캐파(생산능력) 조절 등 적극적인 생산지 변화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LG전자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던 냉장고 물량을 세탁기와 건조기 제조공장이었던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도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건조기 물량 일부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세탁기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고심 중입니다.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했던 물량을 다른 지역으로 내보내는 등 수출처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기아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물량을 미국이 아닌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캐나다로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은 조지아 신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생산 능력을 끌어올려 현지 생산 체계를 강화하는 등 관세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우리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기업도 멕시코를 떠나 미국 현지 생산으로 관세 정책에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2위 완성차업체인 혼다는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차세대 시빅 하이브리드 모델을 멕시코가 아닌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생산하기로 변경했습니다.
캐나다 ‘보복관세’에 '전쟁' 본격화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캐나다의 경우에는 미국의 관세 발효에 ‘보복관세’ 방침을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맞받은 상황으로 관세 전쟁 긴장감이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현지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 및 생산 전략이 대대적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완성차와의 합작사를 포함해 북미에 7곳에 달하는 생산 공장을 운영 또는 건설하고 있습니다. 특히 캐나다 온타리오주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만든 배터리 공장이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간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생산 물량에 제한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는 5일 인터배터리 2025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미국에 있는 공장을 잘 활용해 미국 정책 기조 변화에 대응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 기조가 미국 내 생산 장려인 만큼 이미 현지에 많은 공장을 보유하는 등 선진입 효과로 관세 정책에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있는 우리 현지 기업들이 관세가 적용되면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미국 현지 생산이나 직접 투자를 하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 기업들이 멕시코로 생산 기지를 만든 것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가격 경쟁력 확보 측면이 강한데, 미국의 고임금 노동자들과 이들의 숙련을 위한 정착 기간과 트럼프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등 약간 혼란이 빚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전체적인 원가 단가에 대한 어떤 측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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