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금융당국이 작년 말부터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를 월별·분기별로 관리하기로 했으나, 두 달이 지나도록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당국이 어떤 기준을 내놓을지 몰라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연초부터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 없어 시장 혼선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2025년도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금융위는 특정 시기로의 쏠림이나 중단 없이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계절적 수요 등을 감안한 월별·분기별 기준을 마련해 관리한다고 밝혔습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월별·분기별로 안분해 균형적으로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라면서 "금융은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는 측면에서 대출 중단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언급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양상입니다.
은행들은 당국의 가계대출 압박 기조에 대출 영업을 보수적으로 취급 중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벌써 3월 봄철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작년 말부터 언급돼온 월별·분기별 가계대출 관리 방안이 말만 무성하다"면서 "세부적인 사항 없이는 계쏙해서 보수적으로 대출을 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금융위의 가계대출 관리 방안 발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내용에 불과하다"면서 "연간 대출을 정확히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월 단위나 분기 단위로 정확하게 잘라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지침이 확정되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대출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기존에 해오던 총량 모니터링을 세부적으로 나눠 공식화하는 수준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지금까지 분기별, 월별로 꾸준히 대출 총량을 모니터링 해왔고 이번에 이를 공식화하는 것"이라며 "대출 총량을 이전에 비해 더욱 타이트하게 줄이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을 거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월별·분기별 기준을 마련해 관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 안건 사전 브리핑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 뉴시스)
연초부터 대출 절벽 '기현상'
연말에나 나타나던 은행의 '대출 절벽' 현상도 벌써 시작됐습니다. 한 시중은행에서는 금융 소비자들이 오전 9시 영업시간에 맞춰 은행 앱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루치 한도가 마감됐다"는 메시지가 뜨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간 대출 증가 총량 한도가 넉넉한데도 불구하고 당국의 월별·분기별 관리 방안이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일일 대출 총량을 자체적으로 제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이사철인 2월과 8~9월에 대출을 조금 더 풀고 1월에는 줄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오히려 이사철에 대출이 막힌 형국입니다.
업계에서는 월별·분기별 세부 지침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매월 말마다 대출 절벽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 일어나던 대출 절벽 현상이 월별·분기별 관리 방안 때문에 이젠 매월 말마다 볼 수도 있다"면서 "사실상 주기의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던 1억원 미만 대출과 중도금·이주비 대출을 소득 심사 대상에 포함키로 했습니다. 이외에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겹겹이 규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당국의 규제들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규제들이 하나둘 적용되면 개인들의 대출 가능 금액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연초임에도 불구하고 통상 연말에나 나타나던 은행의 '대출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게시된 모습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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