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요구불예금 이탈에 수익 악화 우려
2025-04-14 14:59:22 2025-04-15 06:55:59
 
[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저원가성 예금인 요구불예금의 이탈액이 커지면서 은행의 수익 구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19조원 정도가 빠져나갔는데, 이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 등에 이용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변동성 커졌는데 위험 투자 늘어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10일 기준 631조186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3월 말 650조1241억원과 비교하면 단 열흘 만에 18조9376억원이 빠져나갔습니다.
 
요구불예금은 기업이나 개인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뜻합니다. 요구불예금에 자금을 넣어둔 것은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자를 준비하거나 용도를 정하지 못한 대기성 자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구불예금이 단기간에 대폭 줄어든 배경에는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일부 국가에 대해선 90일 유예 방침을 내놓는 등 무역정책에 잦은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에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환율과 증시가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면 유동성 자금이 현금성 자산으로 몰리기 마련인데 지금은 반대로 대기성 자금이 빠져나가는 형국인데요. 투자자들이 현재의 불확실성을 위험하다고만 판단하지 않고 시장의 구조 변화 신호로 받아들이며 전략적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관세전쟁 등 영향으로 하락한 국내외 주식을 저가 매수하려는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지난 9일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교역국에 90일간 상호 관세를 유예하기로 하자 뉴욕 증시량은 지난 10일 300억 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관세 전쟁으로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국내 서학개미들이 이를 오히려 저가매수 기회로 판단하고 미국 주식 쇼핑을 늘린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8억6676만달러(한화 약 2조7000억원)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3억7475만달러와 비교하면 미국주식 순매수액은 최근 2주새 약 5배 급증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도 마찬가지로 저가 매수심리에 거래량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은 지난 8일 거래량이 한 달 새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요구불예금에서 이탈한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도 일부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대통령 집무실 세종시 이전 가능성에 지역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이 유력 후보지로 급부상하며 거래량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달 세종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달 715건으로 전월 대비 92.2% 급증했습니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확대 재지정을 발표하고 시행되기 전까지 5일 동안 강남권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습니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발표한 지난달 19일부터 시행 전날인 23일까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에서 체결된 매매 건수는 116건으로 집계됐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10일 기준 631조186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말 이후 10일 만에 18조9376억원이 요구불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그래픽= 뉴스토마토)
 
은행권 조달비용 부담 늘어나
 
요구불예금의 대거 이탈로 앞으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됩니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연 0.1%~0.3% 수준인 저원가성 예금으로 은행이 적은 비용을 들여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합니다. 반대로 정기 예·적금은 금리가 높아 잔액이 늘어나면 은행의 조달 비용을 증가시킵니다.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자금이 부족해진 은행들은 통상 은행채 발행 등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들여 자금을 조달합니다.
 
최근 은행권은 조달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줄이는 추세였습니다. 은행 지주 밸류업 기조에 맞춰 위험가중자산(RWA)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조달 수요를 줄여왔고 금리 인하 추세에 순이자마진(NIM) 하락을 방어하고자 조달 방식을 저원가성 수신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정 속에 요구불예금 잔액이 대폭 줄면서 은행은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상 은행채 발행량이 늘면 은행간 경쟁으로 은행채 금리가 올라 조달비용이 커지고 이는 결국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변동금리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 은행채 AAA 6개월물 금리는 지난 11일 기준 2.737%으로 지난 3월 31일 2.839% 이후 소폭 하락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지금과 같은 자금 이동이 더욱 격화되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데 예측과 달라지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변수가 늘어나면 국내 자금의 흐름이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의 대거 이탈로 앞으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