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넘게 언론계에 있으면서 간혹 잊기 힘든 장면을 마주하곤 한다.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 총천연색 꿈으로 재연되는 마음 속의 작은 지옥이다. 2017년 3월 10일이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있던 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판소 주변에 모여 있던 시위대는 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노인들이었다.
경찰은 헌법재판소 길목을 버스차량으로 차단했다. 파면이 결정되는 순간, 몇몇 시위대가 차벽을 기어오르려 했다. 그러다 한 노인이 차량에서 떨어진 철제스피커에 맞아 절명했다. 어떤 노인은 심장에 무리가 왔는지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그날의 취재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찰 추산 시위대 4백 명. 열에 아홉은 노년층. 안타까운 현장.’
당시 느낀 감정은 적어도 공포는 아니었다. 시위 방식이나 규모도 경찰이 견뎌낼 만했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졌던 폭동사태는 차원을 달리했다. 법원을 둘러싼 시위대 규모가 경찰 추산으로 4만 명에 달했다. 노년층만큼이나 청년층도 많았다. 경찰관을 도구로 때리고, 망설임 없이 법원 유리창을 박살내며, 둔기를 들고 판사를 찾아다녔다. 배후의 존재를 의심할 만큼 폭력의 체계성도 엿보였다. 그날 현장에서 본 것은 파쇼의 ‘시그널’이었다. 시그널은 미래연구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장차 중천에 떠오르는 메가 트렌드가 될지 모를 조짐이기 때문이다.
파쇼는 대동결속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본래 어원과 달리, 1921년 무솔리니가 국가 파시스트당을 결성하면서 위험한 극우정치세력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믿음체계가 확고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보니, 주창자나 시대에 따라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권위주의, 포퓰리즘 태도를 보이는 정적을 몰아붙이는데 동원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파쇼로 규정하려면 몇 가지 특징은 있어야 한다. 첫째, 극단적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다. 다른 국가나 민족을 증오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둘째, 억압적 권위주의다. 다름과 우열을 가려 폭력을 정당화한다. 셋째, 숙의의 파괴다. 포퓰리즘과 선동으로 법 질서와 언론을 무너뜨리려 한다. 비상계엄 사태와 법원 폭동에서 이런 파쇼적 현상이 벌어졌다.
중국과 북한에 극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고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세웠다. 국회와 언론사에 군대를 보내거나, 법원에 난입하는 방식으로 사법부를 억압하려 했다. 사법절차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포퓰리즘과 선동이 난무했다. 극우 유튜브에 몰입한 진영에게 일반 언론은 왜곡의 진원지였다. 2017년 탄핵 현장 때와 달리, 측은지심이 아니라 살벌함을 느껴야 했다. 그것은 분명 파쇼의 시그널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분석DB인 <빅카인즈>에 ‘파시즘, 파쇼’를 입력하고 월별 키워드 트렌드를 봤다. 1990년부터 올해 1월31일까지다. 2020년 7월에 언급 량이 가장 많았다. 당시 조국 전 장관과 황운하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를 “검찰 파쇼”라고 공격했던 시기다. 최근 들어 그 키워드가 다시 고개를 든다. 진보는 보수에, 보수는 진보에 서로 파쇼 낙인을 찍는 탓이다. 적어도 원내에 진출한 정당을 파쇼라고 규정한 건 아직까지 과도한 정치 공세다.
걱정은 머지않는 미래에 있다. 2017년 탄핵 직전의 여론조사를 보면 70~80%가 탄핵에 찬성했다. 인용 직후에는 10% 안팎만 이에 불복했다. 지금의 탄핵 찬성은 50~60% 정도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나오더라도 2017년 때보다 훨씬 많은 불복 의사가 나올 개연성이 크다. 일부 기성 정치인이 파쇼적 형태에 동조하는 건 매우 불길한 징조다. 이런 현상들이 일정한 체계를 갖춘 특정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와 결합한다며 유럽사회에 출몰한 극단적 파쇼정당이 생겨날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 파쇼 이후 처음으로 파쇼를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시그널이 울렸다. 파쇼는 사회불안을 먹고 자라나 그 불안을 더욱 증폭하는 속성을 지닌다. 대중에 영향력을 갖는 파쇼 정당이 대한민국에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뜩이나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나라, 무한경쟁과 서열이 중시되는 사회 아닌가. 편협한 국가주의, 혐오와 증오, 폭력의 구조화가 더 폭주할 게 뻔하지 않은가.
이규연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겸 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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