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김유정 인턴기자] 연말 발생한 12·3 내란 사태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민들은 대통령 윤석열 씨의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8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이번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아이돌 응원봉'을 들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다시 지켜냈고, 이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습니다. 2024년의 주인공은 '윤석열 탄핵'을 이끈 광장의 촛불 시민들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실 2022년 5월10일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는 가속화됐습니다. 윤 씨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줄곧 야당을 향한 적대적 인식을 드러내며 국회를 무력화했습니다. 야당과 비판 세력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민주주의 붕괴는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윤 씨는 취임 후 25건의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45건) 이후 거부권을 가장 많이 행사한 대통령이 됐습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이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에만 올해 3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는데요. 가족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채상병 특검법'도 연거푸 거부했습니다.
올해 4·10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윤 씨는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윤 씨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서 민심이 악화됐고, 이어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 의대 정원 정책, 대파 논란 등 부정적 이슈가 잇따르면서 선거 과정에서 정권심판론에 불이 붙었습니다.
총선 참패 이후 야당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총선 참패에 따른 국정 분위기를 반전 시키기 위해 제1야당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 차례 회담을 진행했지만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습니다. 노무현정부 이후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윤 씨의 위기는 올해 '명태균 게이트'로 정점에 올랐습니다.
(사진=연합뉴스·뉴시스)
결국 윤 씨는 지난 3일 오후 10시28분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야당의 국무위원 탄핵 추진과 예산 삭감 등을 계엄을 선포하게 된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 따라 다음 날인 4일 오전 4시30분쯤 계엄은 해제됐습니다. 야당은 즉각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1차 탄핵안은 여당의 불참으로 무산됐지만, 일주일 후인 지난 14일 2차 표결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윤 씨의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중요 국면에서 멈칫거리는 정치권을 본회의 투표장까지 불러 세운 건 촛불 시민들의 압박이었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에서 다가올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며 "질서있는 퇴진"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낼 때마나 광장의 촛불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한 목소리로 탄핵을 외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박주용 기자, 김유정 인턴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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