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세계 수출 시장 1위 'K9 자주포'의 힘
독일 제품 대비 가성비 우위
'제조업이 강한 나라' 국가전략 강화해야
평화국가 이미지 안보 전략도 도움
외국 고객 상대 'K9 사용자 클럽' 눈길
2024-10-08 06:00:00 2024-10-08 06:00:00
8월 20일 강원도 철원군 문혜리 사격장에서 열린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계 포탄 사격 훈련에서 육군 제7포병여단 K9A1 자주포가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화포는 멀리 있는 적한테 포탄을 날려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안전한 곳에 숨어서 적을 때리면 좋겠는데, 현대 전쟁에서는 포탄을 쏜 화포 위치를 레이더 기술로 금세 찾아내 반격합니다. 포를 쏜 다음에 궤도나 바퀴를 굴려 재빨리 이동해서 계속 포를 쏘는 장비, 즉 자주포가 필요해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주포를 개발했는데요. 한국이 만든 K9 자주포가 수출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000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인도,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이집트, 루마니아가 K9 자주포를 도입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2000~2017년 기간에 48% 점유율(572문)로 세계 수출시장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기간에 독일 PzH(Panzerhaubitze) 2000(189문), 프랑스 CAESAR(175문), 중국 PLZ-45(128문)를 합쳐서 492문이 자주포 국제 시장에서 팔렸는데요. K9은 이 셋을 합친 수보다 많이 팔렸죠. 그 이후 최근까지 K9은 계약 기준으로 세계 시장의 70%쯤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자주포 국제 입찰이 떴다 하면 K9이 도맡아 계약을 따내고 있죠. K9 자주포는 우리 방산 수출에 1등 효자 상품입니다. 배경과 의미를 생각해볼까요.
 
한국 기계공업 기술진 총력 기울여 개발
 
첫째로, K9 자주포 성공 드라마는 우리나라 제조업, 좁혀 본다면 기계공업 경쟁력이 성장한 결과물입니다. 한국은 육군에서 미군이 쓰는 M107 자주포를 사용하다가 비슷하게 본뜬 자주포를 미국 업체 승인을 받아 면허 생산했습니다. 그게 지금도 한국 육군에서 사용 중인 K55 자주포입니다.
 
정부는 1989년 자주국방 차원에서 국산 자주포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1백여 개 기업 인력이 참여해 연구한 결과 1999년 첫 제품을 실전에 배치했죠. 지금은 방산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합니다.
 
국제 입찰이 벌어지면 여러 제품 가운데 K9과 독일 제품인 PzH 2000 상위 두 후보로 윤곽이 좁혀집니다. PzH 2000은 사정거리 40km이며 1분당 10~12발을 쏠 수 있고 온갖 첨단 전자장치를 탑재한 세계 최고급 자주포입니다. K9은 사정거리 40km이며 1분당 6~8발을 쏠 수 있고 필요한 전자장치를 갖췄습니다. K9은 성능에서 PzH 2000한테 그다지 뒤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가격인데요. 1문에 K9은 40억원, PzH 2000은 100억원가량입니다. 독일 제품 1문 값으로 K9 2문을 사고도 남죠. 게다가 K9은 징병제 국가인 한국 특성을 반영해 덜 숙련된 병사도 쉽게 조작하도록 간편하게 설계했습니다. 고객 요청에 맞게 옵션을 자유자재로 변형해 달아주며 납품 기일을 틀림없이 맞춰 줍니다. K9이 가성비가 높고 여러 서비스가 괞찮죠.
 
한국이 미국제 자주포를 쓰다가 미국 업체 모델을 면허 생산한 내력을 앞에서 소개했죠. 지금 미국 자주포는 국제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졌습니다. 성능이 특별하지 않은데 제품가격이 비싸고 유지 보수를 위한 후속 서비스도 잘되지 않기 때문이죠.
 
자주포 제작만이 아니죠. 다들 알다시피 미국은 제조업 전체가 쇠락했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면서 풍요를 구가하던 때는 옛이야기가 됐죠. 미국 경제를 두고 제조업은 없이 금융과 투자, 부동산 산업 위주로 돌아간다고 해서 FIRE(Finance Investment Real Estate) 경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쇠락한 제조업을 되살리겠다고 부르짖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한국은 다행히 제조업 기반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K2 전차를 생산하는 한국로템 창원 공장을 견학했는데요. 우수한 기술 인력들이 잘 정돈된 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장래 일은 걱정됩니다. 대학 입시 때 저마다 의대와 법대만 가겠다고 합니다. 공학과 기술, 과학 분야 인기가 떨어지고 있죠. 미국 대학에서는 과학, 기술과 공학, 수학 분야(영어 앞글자를 따서 STEM 분야라고 부릅니다) 인력 배출이 진작에 확 줄었습니다. 그나마 미국 STEM 분야 대학 졸업생의 25%가 중국인입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제조업 인력 문제가 생길 겁니다. 제조업 강국 위상을 유지할 국가전략을 시급히 고민해야 합니다.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이사(우측에서 6번째)와 김생 방위사업청 국제협력관(우측에서 7번째)이 지난 2022년 4월 27~28일 한화디펜스 창원 1사업장 글로벌캠퍼스에서 개최된 ‘K9 유저클럽’ 행사에 참석해 K9 자주포 운용국 대표단과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산 무기 구매해도 외교적 부담이 없다
 
둘째로, 평화 국가 이미지를 유지한 한국의 대외 안보 전략도 K9 성공에 도움이 됐습니다. 무기 거래는 일반 상품과 다릅니다. 어떤 나라에서 무기를 도입하면 그 나라와 정치적 관계도 깊어집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은 친미 국가입니다. 그런데도 중국과 러시아, 중동, 중남미 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적대하지 않고 무역과 투자를 늘려왔죠. 현 정부 들어 사정이 조금 달라졌지만, 1988년 노태우 정부 이래 20여 년 이런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이것을 개방형 통상국가 노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국가가 외교적 부담을 거의 갖지 않습니다.
 
일본이 방산 수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일본은 안보 전략에서 중국과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죠.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 무기를 도입하려면 많이 망설일 겁니다. 일본과 한편이 되어 중국과 맞서는 모양새를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요. 한국은 말레이시아,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 FA50 경전투기, T50 훈련기, 잠수함 등을 활발히 수출하고 있습니다. 평화국가 이미지를 유지해 온 한국 안보 전략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동아시아 지역 정치를 예로 들어 설명해 봤습니다.
 
우리 당국이 실무 차원에서 국제협력을 잘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K9을 도입한 나라들과 'K9 사용자 클럽'을 만들어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육군은 2024년 8월 오스트레일리아, 이집트, 폴란드 세 나라 군인 14명을 초청해 3주간 K9 사용법을 교육했습니다. 여기에 '육군 국제과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참가 희망 국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포병 천시하던 시절에 나폴레옹이 변화 선도
 
셋째로,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화포와 포병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프랑스 나폴레옹이죠. 나폴레옹이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대부분 귀족 출신인 사관생도들은 기병 병과를 선호했습니다. 말을 타고 다니니 멋있고 전쟁에서 기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화포를 실은 무거운 수레를 끌어야 한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은 포병은 힘들고 비천한 일로 여겼습니다. 코르시카섬 출신 시골뜨기 나폴레옹은 포병을 지망했습니다. 
 
전쟁 기술과 전쟁 양상이 바뀌었죠. 포병이 먼 거리에서 적을 때리는 게 기병이나 보병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나폴레옹이 입증해 냈습니다. 나폴레옹은 포탄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포병에 꼭 필요한 수학에도 재능이 있었죠. 나폴레옹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 전쟁 영웅이 됐죠. K9의 성장과 한국 대외 전략, 나폴레옹 사례를 잘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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