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명의 ‘보수 선언’을 환영한다
2024-10-04 06:00:00 2024-10-04 06:00:00
“저는 사실 거의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MBN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쓸모 있는지를 가리기에 앞서, 그의 ‘보수 선언’을 환영한다. 진보의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은 이가 진보로 규정되는 것은 진보의 오염이고 한국 정치의 재앙이다. “이재명은 진보좌파다”는 꼴보수의 망상으로 그쳐야 한다.
 
이 대표는 금융투자소득세를 두고 이렇게 주장한다. “맨날 뺏기고 부당 경쟁으로 손해 보다가 가끔 한 번씩 돈 버는데, 세금을 내야 한다면 억울할 것.“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손해 보다가 가끔 한 번씩 돈을 버는’ 투자자는 금투세와 무관하다. 5천만원을 초과하는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데다가 ‘이월공제 5년’과 ‘손익통산’을 적용하므로 올해 이익을 봐도 작년에 손해가 컸으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런 투자자는 증권거래세 체제에선 과세 대상이었다.
 
금투세는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폐지와 함께 입안되었다. 증권거래세율이 점점 낮아지는 가운데 금투세마저 시행하지 않으면 금융 투자에 대한 조세는 무너진다. 금투세 시행을 놓고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찬반 여론은 비등하게 나타났지만, 정치권은 기어이 ‘폐지냐, 유예냐’로 선택지를 좁혀놓았다. 금융 조세 원칙을 지지하는 여론, 특히 진보층의 의사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담합에 뭉개지고 있다.
 
이 대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속도의 세대별 차등화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세대간 차별을 두면 연대가 깨지지 않겠나? 합의도 안 될 것이라 본다.“ 혹시 한국 국민연금이 부과식(뒷세대가 납부한 보험료로 앞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나? 자신이 낸 것을 자신이 받아가는 적립식에 가깝다. 청년층 보험료율을 천천히 인상한다고 중년층이 받을 연금이 깎이는 것이 아니다. 세대 갈라치기를 하는 건 이 대표다.
 
”합의가 안 될 것“이다? 그럼 조만간 연금을 받을 사람과 앞으로 오래 납부할 사람에게 곧바로 똑같은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데는 합의가 쉬울까. 가입 기간이 많이 남은 청년층, 중장년이지만 가입 기간이 짧았던 저소득층 및 경력 단절자를 배려하는 것이 진보다. 민주당은 그러나 상위층과 중위층에게 수혜가 쏠리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골몰했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아무리 좋게 봐도 ‘중산층 신보수주의’다.
 
툭하면 ‘전국민에게 동일 액수의 현금이나 상품권을 지급하자’ 외치는 것도 진보가 아니다. 이 대표는 ”주거·소득·의료·교육 서비스 등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사회“를 강조하면서 동일 액수 현금 지급을 보편 복지와 묶으려 한다. 하지만 가령 건강보험의 경우 납부는 같이 하되 혜택은 아픈 사람에게 주어진다. 학교 무상급식이 부잣집 학생을 포괄한다고 해서 가난한 학생이 먹을 밥이 줄지는 않는다. 반면 동일 액수 현금 지급은 가난하거나 위급한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자원을 여유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역효과가 있다. 민주당은 추가 부담 없이 더 받기만 하는 중위층과 상위층을 위한 정당일 뿐이다. 그 극명한 증거는 대장동 개발에서도 나왔다. 임대주택을 줄여 현금배당과 맞바꾸는 것이 진보인지 세계 만방에 물어보고 싶다.
 
민주당은 10.16 재보궐선거를 맞이해 ”영광에 군민 1인당 100만원씩, 곡성엔 50만원씩 매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 단체장이 있는 어느 지역에서도 실현된 적 없는 정책이다. 이재명식 실용주의란 결국 선거용이다. 속이 빤하게 드러나는 전략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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