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한국거래소가 밸류업지수를 발표했습니다. 지수 구성을 보면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심의 기존 인덱스에서 2차전지, 바이오 등의 주요 종목이 빠진 모양새여서 연초부터 주주환원을 강조했던 정부의 설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거래소는 오는 11월경 관련 지수선물과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출시를 예고했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여서 출발부터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정 기준 복잡해도 ‘익숙한 구성’
24일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 마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밸류업지수와 지수 산정 기준, 구성종목 등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엔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 KT&G 등 이미 예상됐던 종목 외에도 SK하이닉스, 셀트리온, 포스코DX, HD현대일렉트릭 등 배당수익률이 낮은 종목들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수는 5단계 스크리닝을 통해 선별됐습니다.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 4개 부문의 지표에 시가총액을 감안해 선별했다고 밝혔는데요. 구체적으론 시총 상위 400위 내에서 2년 연속 또는 2년 합산으로 적자가 아닌 기업 중 최근 2년 연속으로 배당했거나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이 1차 대상입니다. 그중에서 PBR 순위가 전체의 중간 이상, 산업군별 ROE 순으로 최종 100종목을 선정한 결과입니다.
특별히 밸류업 공시를 조기에 실시한 기업은 수익성·시총·유동성 조건만 충족하면 먼저 편입했다며 조기 공시를 독려했습니다.
거래소는 밸류업지수 선정 기준에 대해 이같이 밝혔으나 이 기준을 통과해 지수를 구성한 종목들의 면면을 보면, 투자자들에게 익숙합니다. 시총 상위 대형주 중심의 인덱스에서 성장주에 속하는 2차전지, 바이오 종목들과 배당을 하지 않는 일부 종목을 제외한 정도입니다. 물론 헬스케어 12종목이 포함됐으나 비중에서 유의미한 종목은 셀트리온이 유일합니다.
고배당 등 주주환원이 우수한 종목들로 선별된 지수를 기다린 투자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다른 평가항목에 높은 점수를 받아 편입된 종목이 많은 데다, 상위 10개 종목이 지수 비중의 64%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KOSPI200 기반 인덱스나 배당주 펀드와는 차별화하기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접근 방식은 달라도 결과적으론 현재 운용 중인 대표 배당주 펀드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주환원 강조하더니 ‘실망’
현재 판매 운용 중인 배당 관련 펀드들은 우량 배당주에 투자한다는 운용철학은 같지만 편입 종목들의 성향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시총 상위종목 중 성장주로 불리는 2차전지, 바이오 관련 종목을 뺀 배당기업을 편입한 상품입니다. 특히 삼성전자를 상당 비중으로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02년 4월에 설정돼 22년 넘는 역사를 지닌 스테디셀러 베어링고배당펀드는 삼성전자를 20%에 가까운 비중으로 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를 포함 자산의 2% 이상 편입한 종목은 현대차2우B와 KT&G, SK하이닉스, 신한지주, KB금융 등 6종목입니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경우 시장 평균수익률을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를 편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배당’을 내건 펀드가 배당수익률 1% 미만의 SK하이닉스를 편입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같은 투자방식으로 24일 기준 3개월(-4.80%), 6개월(-2.83%), 1년(9.91%) 등 단기 수익률뿐 아니라 3년(5.64%), 5년(54.83%)까지 장단기 고루 벤치마크를 뛰어넘는 성과를 기록 중입니다.
신영자산운용의 배당펀드도 삼성전자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신영고배당펀드는 삼성전자 보통주를 11.66%, 우선주를 8.71% 비중으로 역시 20% 정도 투자 중입니다. 1조1790억원 덩치의 신영밸류고배당펀드의 경우엔 삼성전자 우선주가 10.11%, 보통주가 8.28%로 우선주가 더 많습니다.
배당 ETF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배당 ETF의 선배격인 PLUS고배당주 ETF의 경우 삼성전자가 아예 없습니다. 시장 평균은 고려 대상이 아니란 뜻입니다. 투자 비중도 비교적 고루 배분해 액티브 펀드에 비해 편입비중 격차가 크지 않은 것도 특징적입니다.
다만 배당을 앞세우다 보니 금융주 일색입니다. 상위 10개 종목 중 금융주가 아닌 것은 KT&G와 SK텔레콤 2종목에 그칩니다. PLUS고배당 ETF의 주가가 금융주와 동조돼 있는 이유입니다.
TIGER코스피고배당이나 KODEX고배당도 일부 특색 있는 종목이 한둘 끼어있는 것 외에 금융주 위주 투자라는 특징은 다른 배당ETF들을 닮았습니다. 배당ETF에 금융주가 많다 보니 아예 배당을 잘하는 은행, 은행지주사만 뽑아서 상품화한 TIGER은행고배당플러스 ETF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밸류업지수는 배당 ETF와는 확연히 다른 종목구성으로 등장했지만 기존 액티브 배당펀드들과는 닮았다는 점에서 기존 상품들과 차별화에 성공하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무엇보다 주주환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총 상위종목 투자로 귀결된 셈이어서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밸류업지수 발표로 상장기업들의 밸류업 공시도 독려해야 해 과연 당국과 거래소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지가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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