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치리더십의 실패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2024-09-19 06:00:00 2024-09-19 06:00:00
지난 9일 조국 대표가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에서 ‘3년은 너무 길다’를 또 꺼냈다. 22대 총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대로라면 남은 임기 3년도 견딜 수 없다며 던졌던 선거 캠페인이었다. 매우 날카롭고 효과적이었다. 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당사자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염치없는 소리였다. 조국 대표는 물론 제1야당의 대표까지 자신들이 사법적 책임의 절벽에 서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야당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면 당시 야당의 비판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리더십의 타락 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의대 증원 밀어붙이기 파장 속에 국정 주도력을 잃은 듯하다. 정부가 의료계와 더불어 풀어야 할 문제를 여·야가 나서서 여야의정협의체를 꾸리자고 한다. 야당은 정부의 무능, 무책임을 비판하면서 거들겠다고 나설 수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있는 여당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아니라 야당과 더불어 해결하자고 한다. 한동훈 대표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거나 야당의 힘을 빌려 대통령실을 압박해야 하는 딱한 신세처럼 보인다.
 
“의료 현장을 한번 가봐라,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상황인식 오류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도 대꾸가 없다. 대통령의 상황 파악이 옳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추가 설명이든 반박이든 호응해주어야 한다. 이번 뿐 아니라 늘 그랬다. 일을 키운 다음에 간신히 사과한다. 비판여론에 호응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리더십의 기본이다. 그게 소통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대통령의 인사는 국정을 방해하는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을 대리한다. 국민들로부터 보편적인 신망을 받는 인사를 주요 직책에 보임시켜야 한다. 그러나 윤대통령은 여권 인사 내부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인사들을 주로 임명했다. 통합의 구심점이 아니라 분열과 진영 양극화의 계기가 됐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해당 직책에 대한 능력’을 발탁 원칙으로 했다지만, 국민의 신망이라는 정무직 인사의 제1원칙이 실종되면 실패한 인사다.
 
영부인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국정리더십에 치명적이다.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야당의 역공세 정치전략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취약한 아킬레스건을 2년 이상 방치해 온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다. 대한민국 같은 국가수준과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 자신의 주변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지지도가 20%대로 바닥이다. 여권 내 충성도도 약화되고 유일한 권력기반은 2022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주권을 행사한다는 투표가 사실은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이라며 대의제를 비판했던 루소의 정언이 실감난다. 
 
대통령보다 헌법체계에 앞서 있는 다른 한쪽 대의기구인 국회 또한 역대 최악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제1, 2 야당 대표의 정치리더십은 사법적 책임으로 위태롭다. 이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는 자신들의 사법 책임에 대한 방어와 역공세 무대로 변질돼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형사피고인과 피의자들이 국회를 소도 삼아 원내에 진출한 경우가 유독 많은 22대 국회다. 이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쟁화로 나타나고 있다. 대의 기능의 약화와 정쟁의 확산이다. 
 
무책임의 독선과 후흑의 권력남용, 정치리더십의 실패와 타락으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부르고 있는 요즘의 한국정치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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