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한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와 서배스천 로사토 노터데임 대학 교수가 새 책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함께 펴냈다. 두 사람 주장의 핵심은 국가는 정글과도 같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생존하려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합리성의 기준은 뭔가? 첫째, 신뢰할 만한 이론에 근거해 안보 전략을 결정하는가? 둘째, 전략을 결정할 때 충분히 심의하는가? 두 가지를 제시했다.
두 사람은 제1, 2차 세계대전 시기 강대국의 전략 결정과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등을 국가가 합리적으로 행동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국가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한 사례도 소개했는데, 나는 후자가 더욱 흥미로웠다.
국가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는 신뢰할 만한 이론에 근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책을 결정할 때 공론 절차를 충분히 밟지 않는다. 심의는커녕 토론을 거부하고 비판을 무시하며 반대 의견을 봉쇄하려고 강제력을 동원하기 일쑤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가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한 대표적 사례다. 미 국무부 고위관리는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가를 걱정하면서 백악관에 깊이 있는 사전 논의를 요청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잠자코 있어라. 대통령이 이미 마음을 정했다”고 토론을 거부했다.
군사작전 이후 국방부가 계획이 있는가를 두고 다른 당국자들도 의문을 제기했는데, 체니 부통령은 “국방부에 더 질문하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았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한테는 억압책을 썼다. 에릭 신세키 육군참모총장이 이라크를 점령하는데 “몇십만 병력”이 필요하다고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고하자, 백악관은 “그 주장은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점령 계획을 세우던 장군에게 전쟁에 소극적인 참모 2명을 찍어서 해고하라고 명령했다.
백악관은 “이라크를 점령하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면 이라크 국민이 미군을 환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라크에 민주주의 가치를 심으면 중동 다른 나라도 잇달아 변화할 것”이라며 도미노 이론을 주장했다.
백악관이 주장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이라크는 반미 테러리즘의 새로운 온상이 됐고, 미군은 전쟁을 10여 년 더 치른 끝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초라하게 철수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급격히 바꾸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토대로 한일 군사협력을 동맹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진보보수 정부가 함께 존중해온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사실상 폐기했다. 대신 흡수통일이나 강제통일에 가까운 대북 정책을 제시했다. 대일본 외교에서, 그리고 역사 인식 문제에서 퇴행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중대한 정책을 어떤 사람들이 어떤 테이블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결정하고 있을까. 국무회의, 국가안보회의, 당정대 회의(여당과 정부, 대통령실 연석회의) 등이 있지만 이런 공식 회의에서 외교안보 정책 변경을 갑론을박하며 제대로 토론했다는 발표를 접해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용산 국가안보실에 김태효 안보실 차장은 확고히 자리를 지키고, 그의 상관인 실장이 네 번째로 바뀌었다. 김 차장은 실력자다. 그건 좋은데 김 차장 1인을 빼고 나면 정책 논의에 변변히 참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미어샤이머 교수 등은 불합리하게 안보 전략을 결정하는 국가의 특징으로 신뢰할 만한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심의하지 않는 점 두 가지를 꼽았다. 용산에서 그런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김태효 차장이 시카고 대학에 유학하던 시절 스승이었는데, 모양새가 공교롭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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