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읽기, 쓰기, 말하기(2)
2024-08-23 06:00:00 2024-08-23 06:00:00
지난 칼럼에서 읽기의 가치와 지혜로운 독서 방법을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선 쓰기의 가치와 방법을 살펴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글쓰기에 대해 울렁증이나 공포감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일기 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선생님은 아이가 올바른 문장과 표현을 배울 수 있도록 일기장에 부지런히 빨간펜 첨삭을 한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글을 쓰면 이렇게 항상 엄청난 지적질을 받는구나라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가급적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다. 이런 아이는 최대한 글쓰기를 요리조리 피해 가는 경로를 찾아 자라나지만 직장 생활에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난다.
 
직장에서 다시 글쓰기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직 직장인의 업무는 보고서로 시작해 보고서로 끝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을 쓰면 돌아오는 것은 상관의 지적질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 검사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원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무엇이든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니 어쨌든 써야 한다. 위에서 결정하고 밑에서 실행만 하면 되는 상명하복의 시대엔 글을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위아래가 쌍방향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글쓰기의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경험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고정관념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선형적(linear)인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잘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시작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글이 막히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수정할 때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글을 아이들이 갖고 노는 레고블록처럼 덩어리로 생각하면 아주 편하다. 비선형적(nonlinear) 방식이다. 블록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니 먼저 떠오르는 것부터 적으면 된다. 처음 쓴다고 반드시 첫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이 블록의 글이 막히면 다른 블록을 쓰면 된다. 블록을 이렇게도 맞춰보고 저렇게도 맞춰보면서 가장 괜찮은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
 
선형적 방식의 글쓰기는 백지나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고 있다. 백지나 원고지는 수정, 편집, 조합이 너무 어렵다. 워드프로세서는 그게 너무 쉽다. AI 시대가 도래했는데 아직도 글쓰기 방식이 원고지 시대에 머물러야 할까? 물론 소설가 김훈 같은 문학가들의 수기 역시 소중한 글쓰기 방식이란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또 하나 강조할 점은 글을 쓸 때 독자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일기처럼 굳이 누군가에게 읽힐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고 읽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써야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내용과 형식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책을 쓸 때 책상 위에 내 독자가 될 사람들의 사진을 붙여놓기도 했다. 독자 중심의 글쓰기는 결국 ‘입장 바꿔 생각하기’ ‘역지사지’의 다른 이름이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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