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IRP로 채권투자 된다더니…"고를 게 없어"
증권사 입맛대로 장외채권만…수익률 낮고 선택지 부족
IRP 가입 마케팅 치중…외형성장만 보다가 집토끼 놓칠라
2024-07-27 06:00:00 2024-07-27 0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인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IRP로 투자할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금리형 자산인 채권 선택지가 적어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하는 가입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IRP에 담을 상품, 많은데 적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도 증권사들은 IRP 신규 가입을 늘리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등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 가입을 넘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연계해 ISA 만기 자금을 IRP로 이전하는 경우 혜택을 주는 등 마케팅의 초점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ISA 자금을 퇴직연금으로 옮기면 세액공제 한도가 추가로 주어지는 부분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증권사들은 IRP 등 퇴직연금 시장을 키우는 데 진심이지만 정작 IRP 가입자들의 투자 선택지는 증권사 편의에 맞춰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증권사들의 연금 마케팅은 대부분 신규 가입과 새로운 투자에 맞춰져 있다. 사진은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현재 진행 중인 개인연금 및 IRP 이벤트 안내. (출처=각 사 앱 갈무리)
 
IRP는 개인연금 중에서도 연금저축과는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개인이 스스로 준비하는 노후자산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IRP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마련한 적립금과 추가로 불입한 자금을 연금 재원으로 쓸 수 있게 만든 계좌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같은 제도적 특성 외에도 연금저축 계좌에는 주식형 및 채권형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제한된 투자상품만 담을 수 있지만, IRP에서는 그 외에 은행권의 예금과 채권, 리츠(REITs),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을 추가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ELB는 파생상품이지만 원금이 보장돼 안전합니다. 다양한 상품군을 담을 수 있게 열어두면서도 레버리지 및 인버스 ETF 투자를 금지하고 위험자산 비중이 70%를 넘지 않게 하는 등 최소한의 조건은 달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노후를 대비하는 가입자들 중엔 연금저축과 IRP 2개 상품을 모두 개설하고 각 계좌의 특성을 살려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IRP 계좌에 담을 수 있는 금융상품 특히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채권투자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릅니다. 우선 IRP에 편입할 수 있는 채권의 가짓수가 적습니다. 
 
예금이자 수준 채권…차라리 RP가 
 
현재 대형 증권사들은 대부분 IRP에서 채권을 거래할 수 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서만 채권 거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대형 증권사들은 물론 중소형사 중에서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중 NH투자증권을 제외하면 모두 장외채권만 투자가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다는 점입니다. NH투자증권에선 일반 계좌에서 장내 채권을 매매하는 것처럼 증시에 상장된 수많은 채권 중 투자자가 선택해 IRP에 편입할 수 있으나, 나머지 증권사에선 오직 해당 증권사가 제공하는 장외채권 중에서만 선택해 매입할 수 있습니다. 
 
장외채권은 일종의 도소매 상품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증권사가 채권 발행사로부터 도매가로 떼어다가 개인들에게 일정 수준 이문을 붙여 소매가로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개인이 채권을 매수·매도할 때 별도의 수수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채권가격에 증권사 몫이 반영돼 있습니다. 즉 그만큼 조금 더 비싸게 사는 셈입니다. 
 
그나마 선택지라도 많으면 좋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날 모 증권사에서 IRP 계좌 전용으로 판매 중인 채권물의 수익률을 보면, 만기가 1년8개월여 남은 롯데글로벌로지스54-1 채권(신용등급 A)의 수익률은 연 3.98%입니다. AA-급으로 눈높이를 올리면 듀레이션이 2년8개월이 넘는 롯데쇼핑99-2 채권 수익률이 연 3.70%입니다. 안전한 국고채 중에서는 2026년 12월이 만기인 국고채01500-2612(16-8)가 연 3.11%입니다. 
 
같은 날 IRP 전용으로 판매 중인 1년만기 저축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3.7~3.8%, 한국증권금융 정기예금은 연 3.50%입니다. 심지어 예수금을 잠시 맡겨두는 용도로 활용되는 RP 금리도 연 3.66%에 달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IRP 시장 빠른 성장세…가입자 불만 귀 기울여야
 
물론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경우 채권가격이 상승해 매매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도, 금리만 보면 굳이 채권을 선택해야 할 유인이 떨어집니다. 만약 IRP에서 장내채권을 편입할 수 있다면, 발행조건은 비슷하면서도 수익률은 더 높은 채권물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또 다른 중위험 중수익 상품인 ELB 역시 선택지가 매우 적습니다. 위 증권사에는 단 한 개 상품을 판매 중인데 1년만기로 목표수익률이 연 3.7%입니다. 
 
연금저축 시장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퇴직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382조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중 개인형 IRP가 약 20%를 차지했습니다. 금액으론 5분의 1 비중이지만 건수로는 IRP가 절대적입니다. 퇴직연금 전체로는 DB, DC형에서 절대적인 은행이 주도하는 시장이지만 증권사들도 IRP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 중이어서 올해도 IRP의 비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IRP는 연금저축보다 더 많은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계좌인데도 증권사들의 편의에 맞추다 보니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증권사들이 가입자 늘리는 데만 신경 쓰는 동안 가입자들의 불만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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