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촉발한 스마트폰 세계에 삼성전자가 재빠르게 적응하면서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IT강국이라는 명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가 개막 중입니다. 한국은 이번에도 적응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아직까진 시원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국내 기업이 신기술 트렌드에 뒤처질새라 AI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LG는 물론, 네이버, 카카오도 고군분투하고 있지요. 네이버가 그나마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글로벌 빅테크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주가가 말해주듯 시장도 아직 확신을 못하고 있죠.
그래도 네카오가 국내 기업 중에서는 AI에 일찍 눈을 뜬 편입니다. 인터넷 바다에서 정보의 관문이 되는 포털의 힘을 경험했던 덕분일까요. 네카오의 눈은 생성형 AI 경쟁력의 핵심이라 불리는 거대언어모델(LLM)로 향하고 있는데요. LLM은 거대한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한 후 답변하는, 인공신경망으로 구성된 언어모델을 말하죠. LLM이 향후 만개할 여러 AI 서비스의 관문임을, 국내 기업들 중에는 네카오가 그나마 경험칙 상으로 제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특히 최근 네이버의 경우 '소버린(Sovereign, 자주적인) AI'에 몰두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반가운 소식입니다. 자국의 언어로 된 LLM을 구축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손을 잡는 것도 불사하기 시작했습니다. AI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와 소버린 AI를 논하고, 프랑스 AI 혁명을 일으키는 중인 미스트랄에 지분 투자를 하는 등 행보가 빨라졌는데요. 어쩌면 일본 총무성발 라인야후 사태가 장기적으로는 예방주사, 좋은 약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브의 분전으로 최근엔 다소 상황이 달라졌지만, 글로벌 포털 강자 구글이 오래도록 한국에 깊숙히 침투하지 못한 데는 사실 네이버, 카카오(다음)의 힘이 컸는데요. 물론 공과 과는 구분해야겠지요. 뉴스 관문 장악 등 한국형 거대 포털의 어두운 그림자는 분명 지워나가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글로벌 시각으로 보면 이들이 포털 주권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고, 기술 발전의 흐름 속 한국이 '넥스트 스텝'을 밟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AI 시대, 경쟁의 속도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넥스트 삼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우리 경제의 오래된 화두인데요. AI 시대를 맞아 그 골든타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네카오로 대표되는 국내 IT기업들 중에 AI 분야에서 승기를 잡는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도 더 늦기 전 힘을 보탤 필요가 있습니다. 데이터 주권을 외치며 자국 기업 보호에 나서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사실 기술 강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민으로도 읽히는 측면이 있는데요. 반면 우리 정부와 국회는 어떤가요. 산업 진흥에 힘써야 할 시기에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또 정쟁에만 매몰돼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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