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민요 가수 레드베리(하디 레드베터)의 '목화밭(Cotton Fields)'은 과거 미국 남부의 목화밭에서 보냈던 고달픈 추억을 회상하는 올드 팝송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삶은 대부분 19세기 미국의 목화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스벤 베커트는 그의 저서 '면화의 제국'을 통해 목화 산업을 영국의 산업혁명보다 빠른 대량생산의 자본주의로 표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 경제성장의 필수 품목인 목화밭 속 노동력 중 여성 노예는 비싼 값에 팔렸습니다. 파라마운트+의 <국가의 탄생: 메리 개프니의 저항>을 보면 여성 노예와 어린 노동자의 피와 눈물, 죽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본주의의 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금지되면서 '노예가 낳은 노예'의 강제 출산을 통해 백인 농장주들은 생산을 유지하려했고 여성 노예들은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몰래 목화뿌리를 씹는 처절함을 메리 개프니의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 사이 비법으로 전해진 피임법인 목화뿌리는 노예가 낳은 노예를 만들지 않기 위해 본인의 세대에서 끝내려는 비통함이 서려 있습니다.
21세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기성세대의 논리는 애를 안 낳아서 큰일이라며 나라가 망한다고 합니다. 특히 인구 변화가 경제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며 산업 논리로서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서둘 것을 주문합니다.
'생산성'이라는 이름 하에 애 낳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요. "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애들을 안 낳아줘야,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5~10년 정도 안 낳아줘야 저희 세대들이 정신을 차릴 겁니다."
지난해 M사 토론에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던진 한마디는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그들을 향한 역동성 구상을 태동기적 '한강의 기적', 구시대적 '낡은 경제론'으로 접근하면 또 다시 인구 정책은 실패를 답습할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학계에서는 특정 역사적 경험으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연령집단을 의미하는 '코호트(동질집단)'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트라우마를 꼽고 있습니다.
구제금융 당시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들의 모습을 지켜본 자녀 세대는 자신의 나은 생활과 생존을 위한 가치관의 홍수에서 자라났습니다. 경쟁 속에 내몰렸던 부모 세대가 자신의 자녀에게 뼈아픈 경쟁을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교육비 27조원 돌파가 오늘날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년 이상 걸리는 취업시장과 입사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회 초년생들. 단기 알바 일자리가 급증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제주, 동남아 등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나 카메라를 든 청년 세대들.
이른바 서울 '강남' 출신이 명문대를 간다는 대학 서열과 경제적 서열의 일치가 드러나는 현상과 경제적 형편으로 인한 부의 대물림 앞에 '노예가 낳은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아닐까요.
이규하 정책 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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