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많습니다. 이슈의 당사자 중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악마화한단 점도 묘하게 닮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슈는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 사태입니다. 처음엔 의사 수 늘리려는 정부에 반기를 든 의사와 의대생 집단이 일방적으로 ‘나쁜 놈’처럼 보였습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변호사들의 밥벌이는 빡빡해졌다지만 법률 서비스 접근성은 점점 개선되는 것 같은데, 의사도 숫자가 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의사들 수입이 조금 줄더라도 의료서비스 측면에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먹고 살 만한 의사들이 정말 밥벌이 하나 때문에, 제자들 밥그릇 챙겨주느라 이 사달을 몇 달째 이어갈 것 같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병원 때문에 새벽같이 줄을 서는 부모들의 불편과, 소아청소년과가 의대생들에게 인기 없는 이유와, 건강보험 재정과 급여, 비급여로 눈을 돌리게 되더군요.
하지만 사태는 현재진행형이고 의사 집단은 이미 국민 다수로부터 악마화된 것 같습니다. 갈등이 봉합된들 상처가 쉽게 아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두 번째는 국민연금 이슈입니다.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한 해법 찾기는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느냐 15%로 올리느냐를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비난이 쏟아졌지만, 마냥 욕할 건 아닙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더 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변신 중입니다. 그 1%에 몇 년치 연금이 달렸으까요. 보험료율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산이든 난산이든 정답에 가까운 해법을 도출할 수만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국민연금’은 젊은 세대들에게 악마화된 지 오래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든 이걸 정하는 구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갈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서라도 요율 현실화는 절실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직역 연금과의 통합이란 큰 산에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논쟁거린,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공방입니다. 두 시간의 기자회견으로 ‘국힙원탑’이 된 민 대표는, 하이브와의 과거를 속 시원히 까발리며 직장인의 애환을 풀어냈다는 세평을 얻었지만, 핵심은 경영권에 있기에 원만히 끝날 사안은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민 대표를 악마화하고 뉴진스 팬덤은 하이브 경영진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덕질’하고 싶었던 뉴진스의 일이기에 이번 논란으로 부디 멤버들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데, 냉정하게 보면 어떤 식으로든 다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론 최근에 불거진 라인 사태입니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겪는 우여곡절에 관한 일이 어째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라인은 분사해서 일본 기업에 지분을 넘겨야 하는 네이버의 골칫거리였으나, 지금은 상대가 일본 정부라는 이유로 한일 갈등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 어떤 이슈든 일본이 끼면 모든 것을 빨아들이죠. 이번 사안도 무엇이 네이버를 위한 일인지 판단이 흐려집니다.
민감한 이슈 혹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있는 이슈도 논의의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순간 합리적 사고는 사라지고 소모적 감정만 남습니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본모습을 되찾길 간절히 고대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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