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인견(目不忍見)에 첩첩산중(疊疊山中)을 더했습니다. 범죄자를 해외로 빼돌리는 조폭 영화에 대한 오마주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호주 대사로 임명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결국 출국에 성공해서 호주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10일 밤, 호주행 비행기 탑승구 바로 앞에서 방송사 기자와 마주친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말했고, 역으로 이 발언을 인용해서 이 전 장관과 윤 대통령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칼럼과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해외파견자들이 거쳐야 하는 국립외교원 교육도 건너뛰고 전임자가 귀국한 뒤 후임자가 출국하는 관행도 무시하고, 호주에 제출해야 할 신임장 원본도 받지 않고 사본만 갖고 나가서 결국은 다음 달에 다시 귀국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역대 국방부 장관이 대사로 나간 사례 박근혜 정부 시절 김장수 장관뿐입니다. 그래도 4강 중 하나인 중국이었습니다. 호주는 외교부 차관보 (1급) 등 실장급 역임자가 가는 일명 '1급지'입니다. 이런 이상한 인사는 그가 윤 대통령이 직결돼 있을 것으로 의심받는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부랴부랴 옷을 벗었고, 현재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인 피의자입니다.
대사 임명 발표 뒤에 그가 출금 상태라는 것이 공개됐으나, 법무부는 몰랐다고 합니다. 출금 업무도 고위공직자 인사검증도 모두 법무부(인사정보관리단)가 하는 일인데, 몰랐다니요? 결국 그는 공수처에서 약식 조사받고, 법무부가 출금을 해제해 주면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공수처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수사는 통상 하위직부터 조사하고 최고위 책임자로 올라가는 겁니다. 공수처는 그동안은 가만있다가 그가 대사로 임명되자 겨우 4시간 조사했습니다. 그 누군들 공수처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오죽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마저도 "굳이 이런 사람을 대사로 발탁해야 했는지 의문", "'대사 임명-약식 조사-출금 해제-전격 출국' 미스터리"라고 했겠습니까?
호주 공영 ABC 방송이 "한국 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corruption probe)에도 호주 입국"이라고 저간의 사정을 보도했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는 지난 7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나라로 평가했습니다. 한국과 같은 독재화 유형에 속하는 국가로는 홍콩, 헝가리 등을 꼽았는데, 홍콩은 중국 중앙정부의 범죄인 인도 송환법이 국제적 문제가 됐고, 헝가리는 지난해 9월 유럽의회가 "'선거 독재(electoral autocracy)'의 혼종 체제"라고 비판한 나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급격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전 장관이 호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은 이 같은 진단이 틀리지 않았을 보여주는 표본 사례라 할만합니다.
국가 권력이 핵심 피의자를 해외로 내보내는 ‘막장극’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될 겁니다.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의 실체를 밝혀야 할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입니다. 범죄자의 해외 도피를 다룬 영화가 대개 비극으로 끝나듯 말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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