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 발전을 위한 규제 개선들은 건실한 내부통제와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가 뒷받침 되어야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지난 20일 금융지주 회장을 불러모았는데요. 이 자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말한 내용입니다.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은행권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는 발언인데요.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내건 바 있습니다.
당초 김주현 위원장은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방탄소년단과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열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융사들도 금산분리 완화 중 금융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했던 '자회사 투자한도 제한 완화'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금융권 때리기가 올 한해 내내 지속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다",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며 공적 역할을 강조한 바 있는데요.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가 은행권 압박 강도가 최근 다시 격해졌습니다.
최근 윤 대통령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 사업체의 운전자금이 부족해지자 개인사업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지금은 매달 높은 이자를 내며 은행들의 이익을 보전해주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은행권 비판 핵심은 결국 막대한 이자이익입니다. 금리 인상기 수혜를 입은 은행이 가만히 앉아서도 손쉽게 이자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건데요. 당국은 은행권 이자장사를 탐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주현 위원장이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막대한 이자이익은 국민들 입장에서 막대한 부담"이라고 일갈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금융시장 상황이 불안하고 고금리의 부작용이 드러나는 가운데 금융시장 안정과 민생 대책이 당상 최우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매금융업을 근간으로 하는 국내 은행업 구조를 무시한 채 이자이익이 늘었다고 은행을 탐욕 집단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은행업은 설립과 폐업은 물론이고 금리 결정부터 상품 출시까지 금융당국 승인을 받아야하는 대표적인 인가업종인데요. 금융당국의 승인 없이 은행권이 자발적으로 수익구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자장사 중심 수익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비이자이익 확대가 필수적인데요. 비이자이익은 은행 뿐만 아니라 증권과 보험, 카드 등 주로 비은행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이익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에 대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금융당국 본연의 역할은 일회적 이익 환수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규제를 풀어 금융사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 후생이 은행권 경쟁 촉진의 본질적이 이유이기도 한데요. 금융소비자에게 더 나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경쟁 촉진의 본질입니다. 금융당국마저 '은행의 탐욕', '돈잔치', '횡재세'라는 정치적 수사에 휩쓸리게 되면 금융소비자 후생 증진도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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