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KT 대표가 선임됐습니다. 장장 반년간 이어진 경영공백도 드디어 막을 내립니다. 차기대표 후보자 1인 선정만 세차례 진행된 후 내려진 결론입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KT는 이제 오는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일까지 다시 새 수장 아래에서 닻을 올리고 항해합니다.
이번 대표 선임을 두고 워낙 진통이 컸던 터라 김영섭 신임 대표의 어깨가 무거울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감은 갖되, 너무 무겁게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대표직에 임하길 바랍니다. 2년 7개월 간이란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자유롭게 항해를 만끽하길 희망해봅니다. ICT기업 수장답게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집단, 소위 재벌기업이라 칭해지는 이들은 이런저런 편법적인 방법으로 일감 몰아주기나 자기 사람(주로 가족) 심어두기를 일삼습니다. 사회의 시선도 제법 관대합니다. '재벌이면 그럴 수 있지' 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인데요. 할아버지, 아버지가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자손이 고스란히 물려 받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의식이 우리사회에 짙게 남아 있습니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아직은 먼 얘기입니다. 가족 중심주의에 관대한 사회인 동시에 재벌을 은근히 동경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KT는 다릅니다. 대기업이만, 여느 재벌기업들과는 달리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 실제 의미는 '주주가 주인인 기업'이라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누구든 주인이 될 수 있는 기업으로 해석되고 있죠. 당장 이번 대표 후보 경선 과정이 그 증거입니다. 후보 등록 기준으로 경쟁률이 수십대 일에 달했는데, 다소 뜬금없는 후보들이 등장해 우려를 사기도 했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재벌 가족이 되기란 다시 태어나도 어려울 것 같은데, 수십대 일의 경쟁률만(?) 뚫으면 되는 KT 대표직 도전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정치권의 입김이 아직까지 유효한 자리인 만큼, 약간의 끈이 닿는다면 뒤숭숭한 시기에 한 번 노려볼 만하죠. 매력적인 자리라 (자격이 안되는 데도) 욕심내는 사람 또한 많은 자리라는 게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기왕지사 이런 치열한 자리이니 신임 대표는 아예 처음부터 연임 생각은 안했으면 합니다. 연임하는 것, 어차피 엄청 힘듭니다. 정치권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국민연금 마음에도 들어야 합니다.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집중포화도 버텨내야 합니다. 그러니 미련 두지 말고 아쉬울 것 없이 2년 7개월을 불태웠으면 합니다. 대신에 확보된 임기 동안 자유롭고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 경영하는 재미를 온전히 누렸으면 합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비우고 일에 매진한 이후에 어쩌면 연임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흠 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우선 KT 살림, 그리고 KT 직원들만 생각했으면 합니다. 사실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데도 이 정도로 불안정한 구조에 처한 임직원은 많지 않습니다. 민영화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3년 주기로 조직이 흔들리면서 구성원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임기 초반부터 인식했으면 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소통하는 리더십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또 ICT업계는 연봉 이슈에 민감한데, 업계 대비해 연봉도 더 많이 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능력 있으면 직원들도 연봉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는 민간기업 느낌을 임직원들이 제대로 실감하는 기업으로 성장해가길 바랍니다. 과거 공기업 이미지 중에선 신뢰라는 키워드만 가져가고, 안주는 가져가지 말길 바랍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다행히 김영섭 신임 대표는 제대로 된 실무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내부 직원들에게 조직의 안정을 우선시 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전임 CEO들의 공과 과 중, 공에다가 자신의 공을 더해 구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기대감 또한 직원들 사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과거 몸담았던 기업에서 받은 평가처럼, 훗날 KT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운 CEO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랍니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민간기업 KT로 거듭나는 초석이 이번에는 정말로 세워지길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김나볏 중기IT부장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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