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기업의 역할'
2023-08-14 06:00:00 2023-08-14 06:00:00
"기본적으로 재벌이 나쁘냐를 다시 물을 때입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재계 한 인사는 '기업가 정신'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기업하면 범법자 되기 십상"이라며 "이래서야 글로벌 기업들이 안심하고 한국에 투자를 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자꾸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는데 보수 정권인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도 이런 현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선 반기업 정서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기업 정서의 대상은 재벌과 재벌총수인데요. 총수가 지휘하는 대기업 집단은 불법·탈법 행위와 부도덕한 경영, 정경유착과 온갖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받기도 합니다. 비단 '재벌'뿐 아니라 '대기업', '자본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자주 통용되는 경제·시장 관련 용어의 상당수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치권에선 이런 반기업 정서를 악용해 기업 쥐어짜기를 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도리어 부추기는 측면까지 있는데요. '국격 추락' 논란을 일으킨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2일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던 건 재계의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삼성은 참가자 다수가 청소년인 점을 감안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파견하고, '오픈 캠퍼스' 사업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LG는 생수와 이온음료, 넥쿨러 지원에 이어 참가자들의 숙소와 한국 전통문화체험 및 견학 프로그램 등을 도왔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잼버리를 지원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에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지원에 나섰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기업이 돕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판단 아래 이 같은 지원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는 걸 정부와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가 해야 하는데 기업이 부랴부랴 나서서 살려낸 건데요. 사고는 정부가 치고 기업이 수습한 셈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4대 그룹 복귀도 물밑 암묵적 압박이 감지됩니다. 재계 1위 삼성이 총대를 메고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 매주 1~2차례 재판에 서는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습니다. 
 
4대 그룹은 정치권력과 기업이 분리되기 위해 탈퇴했지만, 쇄신은커녕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으로 간판만 바꿔 달은 전경련에 복귀하기 껄끄러워 하는 기류입니다. 익명을 원한 정치권 관계자는 "애초에 전경련은 정부와 재계의 채널, 정치적 로비 창구"라며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의 임무는 수장까지 앉히는 게 역할의 전부였다"고 했습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 국민 반기업 정서에 기댄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건설현장 부실시공 사태로 건설업계에 대한 정부의 채찍질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업계는 국민 생명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부실시공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한 분위기입니다.
 
중견 건설사 한 관계자는 "정부 발표 하나로 마치 모든 건설사들이 부실시공을 한 것 같은 분위기가 돼버렸다"면서 "건설사의 이미지 실추와 입주민의 혼선이 가중돼 다수의 선량한 기업 활동이 악마화 되는 분위기"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4대 그룹 한 관계자 역시 "국내에서조차 대기업을 견제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을 느낄 때 가슴 아프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일을 대다수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건데요. 지난달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위해 삼성·SK·현대차·LG·포스코·롯데·한화·GS 등 8대 그룹이 기부한 구호성금만 150억원에 달합니다. 그룹 계열사 특성에 맞는 다양한 피해복구 서비스까지 지원했습니다. 비단 이름이 알려진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중소기업들도 크고 작은 선행으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다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다행히 최근 기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좋아지고 있단 점은 고무적입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올해 '기업호감지수'는 55.9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0년 전인 2013년 상반기의 호감지수 48.6에 비해 7.3점 증가한 것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기업호감지수'란 국민들이 기업에 대해 호의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지수화한 것으로 △국가경제 기여 △ESG경영 △생산성 △국제 경쟁력 △사회공헌의 5대 요소와 전반적 호감도를 합산해 산정합니다. 100에 가까우면 호감도가 높은 것이고, 0에 가까우면 낮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기준점인 50을 넘으면 기업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이 비호감을 가진 사람보다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바라보는 국민 인식은 10년 전 '부정(40.9)에서 현재 '긍정'(53.7)으로 크게 전환했습니다.
 
기업은 이윤 창출을 위해 뛰는 집단입니다. 희생에 당연한 의무가 수반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쉬울 때만 기업을 찾는 정부와 정치권이 이제는 달라진 국민 정서를 돌이켜 볼 때입니다.
 
임유진 재계팀장(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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