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복심' 박정호, 인텔 M&A 반전 쓸까
인텔 낸드 인수 후 적자 확대…영업권 및 무형자산 손상차손 1조원 넘어
인텔 인수 주도했던 이석희 물러났지만 박정호는 신임…영업적자 해결 주목
SK하이닉스 중심 지배구조 개편 과제도 남아…핵심 계열사서 중책 수행
2023-02-07 14:40:31 2023-02-07 15:42:50
박정호 SK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CES에서 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 3사 비전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SK 인수합병(M&A) 역사에 ‘승자의 저주’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약 11조원(90억달러)에 인수한 인텔 낸드사업(솔리다임)이 그룹 주력사인 SK하이닉스에 적자손실을 보태는 모양새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최측근인 박정호 부회장이 이번에도 소방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M&A 전문가인 박 부회장이 실적 반전을 통해 SK하이닉스를 구해내는 것은 물론, 그룹 숙원인 지배구조 실타래까지 풀지 주목됩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4분기 연결기준 1조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분기 단위 영업적자는 2012년 3분기 240억원 적자 이후 40개 분기만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세전손실입니다. 무려 4조2000억원이나 됩니다. 세전이익을 끌어내린 데는 인텔 낸드사업 몫이 컸습니다. 인수 시 인식했던 영업권과 무형자산 손상차손이 1조3000억~1조600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독이 된 인텔 낸드사업 M&A
 
2021년 12월 인텔 낸드사업을 인수하고 작년 상반기까지는 실적이 좋았습니다. 특히 솔리다임에서 만드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실적에 반영된 효과를 봤습니다. 하지만 작년 3분기부터 상황은 뒤집혔습니다. 솔리다임의 저조한 이익창출력이 SK하이닉스 수익성에 주된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반도체 메모리 낸드플래시 시황과 업계 및 수요 시장의 높은 재고수준을 고려하면 당분간 분기 적자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인텔에 인수대금도 다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70억달러를 냈고 오는 2025년에 남은 20억달러를 더 내야 합니다. 인수자금에다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SK하이닉스의 차입금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말 차입금은 12조9000억원이었는데 작년말 23조원에 이르렀습니다. 솔리다임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규 차입에 금리 인상 등으로 높아진 조달비용까지 짓누릅니다. 작년 3분기말 순차입금은 16조6000억원입니다.
 
인텔 낸드사업 인수를 주도했던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해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으로 이동했다가 기술전문위원으로 물러나는 등 업계는 이미 문책성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봅니다. 박정호 부회장은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서 이 전 사장 대신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을 맡는 등 수습에 나선 모습입니다.
 
박정호 부회장은 2012년에도 적자를 보던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데 공헌해 최태원 회장의 신임을 얻은 바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흑자반전이 SK그룹의 대표적인 M&A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만큼 박 부회장이 또다시 반전 스토리를 쓸지 주목됩니다.
 
 
지배구조 개편은 수월할 수도
 
당초 SK지주회사와 합병한 SK C&C에 몸담았던 박정호 부회장은 2017년 SK텔레콤 대표이사로 이동해 SK스퀘어와 인적분할 등 지배구조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이후 SK텔레콤 미등기이사와 SK스퀘어 및 그 자회사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겸직하는 등 그룹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박 부회장이 겸직 중인 회사들은 모두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좌우하는 핵심 계열사들입니다. 인적분할을 통해 SK지주회사는 SK하이닉스에 미치는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했습니다. 하지만 과제는 여전합니다. SK텔레콤과 SK스퀘어에 대한 SK의 보유 지분은 각각 30%에 불과합니다. 의결권은 과반수 미만으로 종속기업 기준에 미달하나 SK는 양사에 대한 실질지배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지주회사 연결실적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SK하이닉스에 대한 SK스퀘어 지분은 20%에 그칩니다.
 
이 때문에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를 관계회사로 인식해 지분법이익만 순이익에 반영, 지주회사 SK까지 전달하는 구조입니다. 즉, 반도체가 성장산업인 만큼 SK하이닉스가 더 커지기 전에 SK가 지배력을 확대하는 게 그룹의 지배구조 숙원사업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를 SK 자회사로 끌어올리기 위한 개편을 고민할 때는 실적이 좋은 회사를 분할하는 것에 대한 여론 부담이 컸었다”라며 “실적이 부진한 지금이 오히려 지배구조 개편엔 유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업적자 회복은 발등의 불
 
당장은 솔리다임이 발등의 불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사업을 사들이면서 중국 다롄공장도 확보했습니다. 작년 10월 BIS(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는 대중국 수출 통제조치를 발표해 중국 내 미국산 장비 반입 시 허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에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년만 규제 유예를 받은 상태입니다. 인텔은 SK에 중국 공장을 매각한 이후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만 달라며 의회에 요청하는 등 얄미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 실적이 부진한 원인은 낸드사업 의존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인텔 M&A 건은 낸드사업을 키웠고 하필 인수 이후 시황이 추락했습니다. 솔리다임의 주된 경쟁력은 기업용 SSD인 만큼 향후 글로벌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등 서버시장 수요 회복 여부가 실적 회복의 관건입니다.
 
D램보다 낸드플래시 추격이 빠른 중국 후발업체는 또다른 변수입니다. 중국 YMTC는 2020년 128단 제품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작년 말엔 232단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이러한 YMTC는 미국의 장비 수출 제한으로 추가 증설의 어려움을 겪을 듯 보이지만 범용제품 위주로 경쟁이 심화될 전망입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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