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는 '은행 국감'이라고 부를 만했다. 국내 5대 시중은행 은행장을 모두 증인으로 소환해서다. 이는 대규모 횡령사고와 이상외화송금 등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문제를 묻기 위함이었다.
국감에는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출석했고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권준학 농협은행장 대신 임동순 수석부행장이 나왔다. 장관급 주재 행사나 신년 금융인 행사가 아니면 주요 시중은행장들을 이렇게 한 곳에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라성 같은 대형 은행장들을 불러낸 국감 치고는 변죽만 울리고 끝났다는 평가가 자자하다. 정무위원들은 막대한 이자이익을 얻으며 최대 영업이익을 갱신하는 은행들이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여야 구분없이 질책했다. 정무위원들의 질문에 은행장들은 연신 '송구하다', '시정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향후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과거 국감에서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출석시킨 후 의원들이 군기잡기식의 호통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만, 차라리 그런 모습이 아쉬울 지경이다. 일부 정무위원들은 누가 은행장인지 헷갈려하는 모습을 연출하는가 하면, '은행장들 모두 순차적으로 답변해주길 바란다'며 4명의 은행장 일일이 마이크를 돌리느라 질의시간 대부분을 흘려보냈다.
당연하게도 횡령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문답은 나오지 않았다. 은행장들은 "책임지고 직원 윤리의식을 뜯어고치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수장들에게 어떻게 스스로 칼을 대겠다고 묻는 것 자체가 날카로운 답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금리인하요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예대마진을 과도하게 챙긴다는 지적에 대해선 "수용건수가 급증하다보니 수용률이 떨어져보인다", "선진국에 비해서는 우리나라 은행이 예대마진이 높은 편이 아니다"는 해명을 하기 바빴다.
무분별한 점포 폐쇄에 따른 취약층 보호에 대한 대책도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다. 은행장들은 타 은행과의 공동점포나 특화 점포 설치와 같은 기존의 대책을 반복했다. 그동안 은행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해명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국감 한 번으로 인해 뚜렷한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 다만, 은행장들을 국감장에 줄줄이 세워놓고 망신을 주거나 확답을 받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금융사 임직원의 내부통제 준수 범위와 제재 근거를 규정하는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국회에 계류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물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중징계를 내려도 법적 근거가 없어 법원에서 번번히 뒤집히고 있다.
아직 국감은 끝나지 않았다. 종합감사에서라도 횡령 사고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금융당국에게 질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감독과 검사, 제재의 절차에서 법적 근거라 필요한 부분에 대한 당국의 입장을 되물을 수도 있다. 무의미한 이슈몰이보다는 제도권화로 가는 논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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