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인해 자금유동성이 줄어들면서 벤처투자 시장도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투자에 따른 손실 위험이 커지자 이러한 불안은 벤처업계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미래 유망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벤처투자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수익'에 집중하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를 받는 쪽과 받지 못하는 쪽의 양극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밴처캐피탈(VC) 역시 기업 규모에 따라 펀드출자자(LP) 모집 여력이 달라지면서 자금이 풍부한 곳에만 자금이 도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2편에 걸쳐 벤처기업 투자와 VC 양극화 현상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8월24일 '벤처썸머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벤처기업협회)
[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올해부터 투자유치를 시작한 기업들은 다 곡소리를 내고 있다. 제조로 바로 연결되는 기업들은 투자가 잘 이뤄지는 것 같은데 IT쪽이 주춤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기업가치를 깎으라는 얘기도 나온다." (A벤처기업 대표)
"최근에는 매출을 바로 발생시킬 수 있는가가 투자 기준이 되고 있다.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금액은 크지 않아서 아직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순풍하고 있던 벤처들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영향이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B벤처기업 공동창업자)
"이제야 처음 투자를 받아보려고 하는데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 올해 초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지금은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신재생에너지 쪽이 아니면 다 힘들다는 분위기다." (C벤처기업 대표)
저울이 기울고 있다. 성장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보다는 당장 '수익' 내기에 유리한 벤처기업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전체 자금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한쪽으로 자금이 쏠리자 다른 쪽은 가뭄상태가 됐다. 급기야 후행투자를 받지 못해 사업영위가 어려워지자 최근 벤처기업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수익성'이 투자 지표
벤처투자는 본래 긴 호흡으로 기업의 성장을 기대하며 진행된다. 그러나 대내외적 악재로 긴 호흡을 가져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VC들은 당장의 수익을 담보로 한 깐깐한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위 돈 되는 기업에만 자금이 쏠리게 된 것이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투자업계와 벤처기업 대표를 만나보면 전만큼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이 아니어서 투자를 신중하게 하는 분위기"라며 "한국의 경우 모태펀드라는 정부의 마중물이 있어 갑자기 투자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VC들이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고 선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7~8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회수할 수 있는 업종, 즉 플랫폼에 자금이 쏠리고 있다"고 했다.
박진우 다다익스 대표는 "VC와 액셀러레이터(AC)를 만나보면 시장이 얼어붙어 투자가 쉽지 않다고 첫마디를 건넨다"며 "아직 시드단계의 펀드는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미팅을 하다보면 여파가 점점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투자 심사를 할 때마다 수익 실현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더욱 강하게 듣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벤처기업들은 투자 유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신규투자 대체로 꺼려…후행투자도 줄이는 추세
VC들이 투자 규모를 대폭 줄이면서 신규투자가 타격을 더 크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VC 대표는 "다른 VC들에 비해서 신규투자를 공격적으로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신규투자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신규투자는 닫았다"며 "후행투자도 3곳 중 2곳 정도에만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꿈 먹는 비즈니스들은 자연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량으로 가는 곳만 위기를 버텨 내공을 쌓고 투자를 받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른 VC들 역시 지난해와 달리 투자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는 분위기다. 제2벤처붐에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이들의 신규투자 유치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수익을 빠르게 낼 수 없는 벤처기업의 경우 도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 7일 발표한 '2022년 9월 스타트업 투자 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9월 투자건수는 123건으로 전월 151건보다 18.5% 줄어들었다. 투자금액은 8월 8628억원에서 9월 3816억5000만원으로 55.8%나 급감했다. 투자금 감소에는 비공개 투자 건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9월과 대비하면 투자건수는 증가했으나 투자금액은 줄었다.
중기부, 인센티브 도입 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11일 김정주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투자과장은 "기업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VC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에 현실적으로 제약이 따르고 있다"며 "초기투자는 투자 금액이 크지 않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후기투자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럴 때일수록 투자활력이 꺼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투자를 조기 집행할 경우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을 올해 안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벤처기업 간담회'에서 2분기 신규 벤처투자가 위축됐다고 지적하며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세제 인센티브 지원과 관련 제도를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강삼권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이 있어야 지금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강 회장은 벤처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회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누자 투자한다고 하면 무조건 현금을 확보하라고 조언한다"며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허리띠를 졸라 매야한다"고 당부했다. 최근엔 벤처기업 대표들도 마냥 투자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융자 등 자체적으로 자금 확보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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