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 부반장이었다
. 학기 말 표창장을 받았다
. 호명 받고 앞으로 나가던 중 우리 반 짱이
“표창장은
‘진짜 상장
’이 아니야
”라고 비꼬았다
. 진짜 상장이 아니면 어때
. 난 엄마에게 표창장을 내밀고 용돈
200원을 요구할 생각에 웃음이 났다
. 200원이면 당시 최고의 인기 게임이자 한 판에
50원인
‘보글보글
’ 오락을 무려
4판이나 할 수 있었다
. 그리고
35년이 지난
2022년
7월
, 그때 외친 우리반 짱의 말이 떠오른다
. 표창장은 진짜로 상장이 아닐까
. 그러면 아무 의미도 없는 걸까
.
요즘 욕 메일에 한참 시달렸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브로커’와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에 대한 혹평을 쏟아낸 탓이다. 욕설은 기본이고 대한민국 악플러 전매특허 ‘부모님 욕설’과 ‘직업을 빗댄 욕설’도 많았다. 국내 영화 시장에선 국제영화제 수상 여부가 해당 영화 평가의 절대치로 환산되는 값비싼 포장 역할을 한다. 온라인과 SNS에선 혹평과 악평을 저격하는 ‘댓글’이 기승을 부린다. 열성 팬들의 ‘팬심’이라기엔 선을 넘는 일이 부지기수다.
난 칸 영화제 트로피가 이들 영화의 가치를 대변한다 여기지 않는다. 상업영화로서 가치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흥행’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업영화를 타이틀로 내걸었다면 ‘재미’와 ‘흥행’이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재미는 상대적인 것이라 모두에게 일괄 적용할 순 없지만 현대 영화 산업에선 ‘관객수’란 수치로 도출된다.
상장은 어떤 노력과 과정을 인정하는 상징이다. 그렇다면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이 받은 트로피도 ‘인정’의 의미일 듯하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두 편의 영화는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표창장은 한 장의 종이일 뿐 중요한 건 그에 따른 보상이었다. 200원과 4판처럼. 영화에선 흥행이 곧 보상이어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박찬욱 감독은 “칸 트로피보단 국내 흥행에 더 목 마르다”는 말로 수상과 흥행은 별개란 점을 강조했다. ‘브로커’는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을 이끌어냈지만 실제 현지에선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었단 전언이었다. 그리고 두 편 모두 국내에선 ‘칸 국제영화제 수상’ 프리미엄이 무색할 만큼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 중이다. 보상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실패다.
하지만 그럼에도 표창장의 힘은 강하다. 두 영화를 만든 한국과 일본 거장 감독은 또 다시 기회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제작 기반과 쓰고 싶은 배우를 캐스팅할 모든 기회가 두 감독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에겐 아무도 흥행 실패 책임을 묻지 않는다. 수상 프리미엄만이 빛날 뿐이다.
최근 오랜만에 만난 독립영화 감독이 신작 제작 어려움을 토로했다. 몇 년 동안 각 지자체 지원금을 쫓아다니느라 캐스팅 작업은 고사하고 시나리오 수정 작업할 시간 내기도 빠듯하단다. 기한 내에 제작을 못하면 가까스로 받은 지원금까지 토해내야 하는 실정이라고. 이 감독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종사하는 많은 감독의 현실이 그렇다. 어떤 감독에게는 “큰 의미 없다”며 ‘쿨’한 척할 수 있는 ‘국제영화제 수상 타이틀’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다음 번 영화 제작 기회를 가져다 줄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 그 표창장 하나가 없어 제대로 시작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우리 반 짱의 비꼬던 말이 어쩌면 ‘팩트’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트로피가 모든 걸 대변한다? 그 착각부터 버리고 시작하면 좀 더 풍성해질 우리 영화 시장이 될 수 있진 않을까.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이미 결과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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