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이정훈씨가 "짜 맞추기식 수사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양은상 판사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이씨가 지난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 '고니시'와 서울 소재 호텔과 덕수궁 등에서 만났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회합 당시 이씨가 자신의 활동 상황과 국내 진보 진영 동향 등을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씨가 이 과정에서 '일심회' 발각 경위와 새로 만든 조직 설명, 무너진 '영도 체제' 회복 방법 제안, 국내 지역별 진보진영 현황 등을 이야기했다고 본다.
또 검찰은 이씨가 북한의 암호화된 지령문·보고문 송수신 방법을 교육받았다는 혐의도 설명했다. 검찰은 "(고니시가) 문서 내용을 평범한 그림이나 문서로 위조하는 방식을 개관하고 실습해 보라고 독려했다"며 "실습 장면을 지켜보며 지적하는 방법으로 교육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씨는 수사기관이 짜 맞추기 수사를 했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도 뚜렷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씨는 "공안 당국의 짜 맞추기 수사와 증거 조작을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이 만든 비상식적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 공안 당국들의 조작 유혹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니시'란 인물의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이씨는 "검찰 증거자료에 의하면 고니시는 2020년 2월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사망했는지, 사라졌는지에 대한 확인 과정이 너무 부실하다"며 "이 사건은 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공안 당국이 고니시를 추적하다 저와의 만남을 계기로 양방향을 추적하다 그가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지난 1997년 자수 간첩 조모씨가 쓴 안기부 진술서 내용을 토대로 1980년대 활동한 20대 공작원이 50대가 돼 한국에 드나들 것이란 추정이 사건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고니시'의 추정 나이가 법원의 도청 허가 등 당국의 필요에 따라 바뀌었고, 박근혜정부 당시 수시로 통신기록이 감청됐다는 주장도 폈다.
이씨는 "현재 국정원은 3년 유예 기간을 두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건은) 대공수사를 유지하려는 국정원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두 차례 준비기일을 거쳐 10월6일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씨는 2018년 10월~2019년 9월 북한 대남공작기구로부터 해외 웹하드를 통해 암호화된 지령문을 수신하고, 5차례에 걸쳐 보고문 14개를 발송한 혐의를 받는다.
이밖에 2018년 7월~2019년 7월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 등을 펴내 북한 주체사상과 세습독재, 선군정치와 핵무기 보유 등을 옹호·찬양한 혐의도 있다.
앞서 이씨는 2006년 북한 공작원에게 국내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는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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