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과 냉전 중이다
. 사춘기에 들어선
6학년 딸은 잔소리 한 마디에도 까칠한 태도로 반항을 드러내고 있다
. 이런 딸의 성장이 부모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읽히는 나는 딸의 태도가 마뜩잖다
. 이런 이유로 딸과 언쟁을 벌이는 날이 많아졌다
. 나도 괴롭고 딸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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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이날도 책상 정리 문제로 딸과 한바탕 벌이고 속상한 마음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한숨을 쉬는데 불현듯 오싹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양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훗날 성인이 된 딸이 ‘내가 내 부모에게 했던 원망을 내게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말 그대로 ‘옛날 사람’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그런 삶에 일말의 의문도 갖지 않던 분들이다. 그 세대는 그랬다. 자식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드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나와 친구들은 ‘누구 엄마아빠가 더 무섭나’를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 “우리 아빠는 빗자루로 때려” “나는 엄마한테 허리띠로 맞아봤어” 우리는 누가 더 무서운 무기로 얼마나 세게 맞았나를 앞다퉈 늘어놨다. 그 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 ‘승자’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불에 지도를 몇 번 그린 뒤 엄마가 팬티 바람으로 이웃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 했다. 오줌 묻은 이불을 들고 옆집에 가니 옆집 아줌마가 소금을 준 뒤 회초리로 내 엉덩이를 때렸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내 울음소리에 그 아줌마와 또 다른 이웃 주민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집 앞에서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풍습이란 이름 아래 웃고 떠드는 ‘동네의 해학’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시대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아동학대’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작은형은 개고기를 못 먹는다. 난 안 먹는 것이다. 하지만 형은 못 먹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던 ‘똘이’를 뒷산에 데려가 매질을 해 보신탕으로 끓여내는 걸 본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 개고기를 ‘소고기’라 거짓말로 포장해 내게 먹인 부모님은 넙죽 받아 먹는 꼬맹이 시절 날 보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시기도 했다. ‘똘이’는 나와 작은형에게 그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잘못됐단 게 아니다. 당시 부모들이 그랬단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자식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 그런 부모님 세대 자식으로 태어난 나 역시 자식 앞에선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란 생각으로 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부모님 세대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면서도 절대적이던 권위에 답답함을 느끼는 나다. 그런데 내가 내 딸 앞에서 ‘부모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 권위에 도전하려는 딸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더 큰 권위로 덮으려 한다. 소름이 끼친다.
조선시대,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다. 이 내용을 영화로 만든 이준익 감독 영화 ‘사도’. 당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시선과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 시선. 그 시선의 충돌이 어떤 파국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딸이 잘 되길 바라는 내 마음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두 시선이 충돌하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난 아직 성숙되지 못한 어른이고 부모일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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