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사건 누명' 윤성여씨 재심 무죄...재판부 사과
재판부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 못해"…윤씨,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예정
2020-12-17 15:22:23 2020-12-17 15:22:2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내몰려 20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31년 만이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는 17일 윤씨 살인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을 열고 “과거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결국 잘못된 판결이 선고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과거 경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과 이를 묵인한 검찰, 신빙성 없는 감정 결과를 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행위로 믿지 못할 증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우선 '이춘재 8차 사건' 수사 당시 경찰이 윤씨에게 동행 거부권을 알려주지 않고 화성경찰서에 24시간 머물게 해 불법 체포·감금한 점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앉았다 일어서기 등 가혹행위로 이 사건 범행을 자백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당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읽고 쓰기가 어려웠는데 경잘이 부르는대로 자술서를 쓰게 하고 진술조서와 신문조서 내용을 제대로 열람하거나 읽어주지 않았다"며 "실제 피고인 진술에 입회하지 않은 사람도 입회했다고 작성한 점이 위법이 인정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거동이 불편한 윤씨가 피해자 집 담을 넘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수사 기록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봤다. 경찰이 사건 당시 윤씨가 머물던 공업소에서 1Km 떨어진 범행 현장으로 움직였다면서도 주요 경로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범행 현장과 피해자의 상태 등 제출된 증거에 윤씨를 범인으로 볼 객관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 현장에 있던 음모와 윤씨 체모가 동일하다는 방사성동위원소 검사 역시 정확성이 떨어져 신뢰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반면 이춘재는 범행 경위와 방법, 피해자 집 근처에 장기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등 진범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춘재는 이 법정에서 범행 경위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며 "매우 신방성이 높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주문 선고 직전 윤씨에게 “잘못된 판결로 인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르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선고되는 이 사건 재심판결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피고인의 명예 회복에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선고 직후 윤씨 변호인단과 지인들은 박수와 환호로 무죄 선고를 축하했다. 검사들도 윤씨와 변호인에게 다가가 "수고하셨다"며 인사했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 때 윤씨에게 무죄를 구형하고 사과했다.
 
법원을 나선 윤씨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취재진에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모르겠다. 앞으로 살면서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윤씨는 수사 경찰 등 강압수사를 벌인 이들을 개인적으로 용서했지만, 변호사를 통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윤씨 변호인은 "오늘 판결을 토대로 이제는 경찰과 검사의 불법행위, 법원의 오판에 이르기까지 관여한 이들의 불법행위, 과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잠을 자다가 성폭행 당하고 숨진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1심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2·3심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 간 수감생활을 한 윤씨는 감형돼 2009년 출소했다. 재심은 이춘재의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청구했다.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고를 치른 윤성여씨가 17일 재심 무죄 선고를 받고 수원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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