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예금자보호한도가 종전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늘어났으나 시중은행은 예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소극적인 모양새입니다. 정부의 고강도 6·27 부동산 대책 때문인데요.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량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하는 만큼 수신을 늘려야 할 요인이 크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예금자보호한도 늘어도 금리 1%대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가 늘어나 예금금리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중은행 예금금리는 최저 1%대에 머물러 있으며 인터넷전문은행 금리 역시 2% 중반대로 전월 2% 후반대였던 것에 비해 되레 줄었습니다.
예금자 보호 제도는 금융기관이 파산 등을 이유로 고객에게 예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예금공사가 예금자의 원금과 이자를 대신 보장하는 장치입니다. 정부는 이달부터 예금자보호한도를 2배 상향해 1억원까지 확대했는데요. 이에 따라 금융회사나 상호금융조합, 금고에서 예금 지급이 어려워질 때 예금자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최대 1억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24년 만에 예금자보호한도가 높아진 것이라 은행들 간 예금리 경쟁이 붙고 대규모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 가능성까지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인뱅 모두 예금금리 경쟁에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지난 1일부터 상향된 예금자보호한도가 적용되고 있지만 예금금리는 기존 1~2%대에서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난 3개월 전과 비교하면 예금금리가 떨어졌습니다.
이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예금금리를 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정기예금금리는 1.95%입니다. 신한은행은 2.0%, NH농협은행은 2.10%, KB국민은행이 2.25% 순으로 높았습니다.
3개월 전인 6월 초와 비교하면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의 예금금리가 떨어졌습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2.10%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0.10%p, 0.15%p씩 떨어졌습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그대로였으며 국민은행만 2.10%에서 0.15%p 올랐습니다.
인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 정기예금 금리는 2.70%에서 2.50%로 0.20%p 줄었으며 케이뱅크도 2.75%에서 2.5%로 0.25%p 쪼그라들었습니다. 토스뱅크는 2.50%에서 2.40%로 0.10%p 내려왔습니다. 현재 수금리 수준이 시중은행 보다 높긴 하지만 여전히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축은행 또한 시중은행처럼 수신 요인이 크지는 않지만, 기본 금리 자체가 높은 편입니다. 이날 기준 애큐온저축은행 예금금리는 3.25%, DB저축은행 3.20%, BNK저축은행 3.15%, 다올저축은행 3.11%, SBI저축은행 3.05% 등으로 대부분 저축은행의 예금금리가 3% 초중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정부 가계대출 관리 기조 영향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명확한 만큼 예금금리를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금융당국은 6월 27일 새로운 가계대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은행권에 올해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증가액 규모를 당초 목표액보다 50% 감축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은행들은 총량 한도를 관리하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대출 증가세를 줄이기 위해 이자 마진에 해당하는 가산금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의 신규 주담대 평균 금리는 7월 연 3.96%에서 두 달 연속 0.09%p 올랐습니다.
한편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한 지난 1일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 최근 은행의 낮은 예금금리와 높은 대출금리 차(예대금리차)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신한은행은 권 부위원장이 발언한 다음 날 곧바로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실행하는 '새희망홀씨' 우대금리를 기존 1.0%p에서 1.8%p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대출 빗장거는데 예금 쌓아둘 이유 없어"
일부 은행들이 높은 예대금리차 지적을 의식해 가계대출 금리를 소폭 인하하긴 했으나 당장 예금금리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기대감으로 시장 금리가 떨어져 예금금리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다 6·27 부동산 대책에 따라 가계대출 규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낮추면 수요를 부추길 수 있어서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규제로 돈을 많이 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 재원 조달 부분이 급하지 않아 수신상품의 금리를 굳이 높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고 예금금리를 내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목표 규제가 있어서"라며 "가계대출 수요를 늘리면 안 되기 때문에 예대마진이 줄지 않는 것인데 이제 와서 대출금리는 그대로 놓고 예금금리를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대출 자체를 일정 기준이 차면 내주지 않고 있는데 예금액만 쌓아놓을 이유는 없다"며 "은행별 수신 목표액 등 상황에 따라 이벤트성 상품을 출시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예금금리가 높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금자보호한도가 종전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늘어났으나 시중은행은 예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소극적인 모양새다. 시중은행 예금금리는 1%대에 머무르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경쟁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예금상품에 가입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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