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금융지주사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거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당장 문제는 없으나 향후 지배구조를 흔들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기 대선 등으로 정부가 새로 들어섰을 때 이런 자문사 의견을 토대로 국민연금과 금융당국을 통해 리더십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ISS, 이사 선임 안건 무더기 반대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주요 금융지주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무더기로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명목으로 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이사 선임 안건을 반대한 것입니다.
하나금융지주(086790)에 대해선 함영주 사내이사를 포함해 이승열·강성묵 사내이사 등 기존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부실 감독 책임이 있고, 소비자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신한금융의 이사진 재선임과 관련해서도 반대 권고를 내렸습니다. 라임펀드 사태, 채용비리 사건 등에 대해 감시·견제 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ISS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의결권 행사 자문을 제공하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입니다. 전 세계 의결권 자문 시장에서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기관투자자 2000여곳이 ISS의 자문을 받고 있는 만큼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ISS는 내부 의결권 가이드라인에 따라 의견을 정하고 있습니다. '중대한 법적 판단이나 기소', '경영진·이사 교체의 미흡'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문제가 되는 후보, 혹은 전체 이사회 후보 선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ISS가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이사진 선임을 반대한 것도 라임펀드 사태, DLF 사태에 대한 사법 리스크와 조치 미흡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ISS는 매년 주총 시기마다 반대표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앞서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도 이들 금융지주사의 이사진 후보 선임을 반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가결됐지만, ISS가 반대 입장을 밝힌 후보들에 대해선 반대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었습니다.
글로벌 자문사 ISS 권고안은 금융지주 지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진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 본사 모습. (사진=각 사)
국민연금 영향력 행사 주목
금융권에선 ISS의 반대 의견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이사 선임 안건이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융지주의 경우 ISS의 자문의 영향을 받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이 대체적으로 높지만 사측에 우호적인 전략적투자자 등도 상당합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과거에도 신한금융, 우리금융의 이사 선임안에 ISS가 반대표를 권고했지만 결국 문제없이 통과된 전례가 많다"며 "사측 우호 지분이 상당한 금융지주일수록 이번 ISS 권고안이 주총 표심에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글로벌 자문사의 지속적인 반대표 행사가 외풍의 불씨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ISS 등의 권고를 참고하고,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국내 금융그룹의 실질적 최대주주로서 몇해 전부터 시행된 스튜어드십 코드에 맞춰 금융지주사 주총에서 입김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인데요. 국민연금이 상장 기업에 대한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국민연금은 윤석열정부 초기에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 바 있습니다. 당시 신한금융의 조용병 회장과 우리금융의 손태승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습니다. 국민연금은 두 사람에 대해 기업 가치 훼손과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모두 반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융당국의 거취 압박까지 더해지며서 이들 회장은 결과적으로 자리에 물어나야 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이 일반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금융사는 KB금융(8.37%), 신한금융(8.57%), 우리금융(6.71%), BNK금융(8.67%) 등입니다. 지난달 하나금융의 지분 보유 목적을 기존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했습니다. 일반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사 선임 반대, 배당 제안, 위법 행위 임원에 대한 해임 청구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단순투자는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관여하지 않습니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올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줄어든 것은 하나금융 외에 회장 교체 이슈가 없는 데다 탄핵 시국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민연금은 정권 초기에 국정 방향에 맞춰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근거가 되는 자문사의 반대 의견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ISS 등의 권고를 참고하고,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의결권을 행사한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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