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KCGI 등 3자연합과 힘겨루기 중인 조원태 한진칼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 주가 하락에 따른 신주인수권 행사가액 조정으로 KCGI 측이 신주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재원 부담을 크게 덜었기 때문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한진칼(180640)은 ‘전환가액·신주인수권행사가액·교환가액의 조정(안내공시)’를 냈다. 이는 한진칼이 지난 6월에 30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제3회차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을 기존 7만7000원에서 6만8300원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한진칼 신주인수권 보유자는 신주인수권 1주당 6만8300원을 지불하면 보통주 1주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때 지불하는 금액이 행사가액이며, 보통주를 새로 발행해서 주기 때문에 신주인수권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행사가액 조정은 최초 BW를 발행할 때 이미 약속된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BW를 발행할 때는 주가 하락 시 BW 투자자들의 손실을 일부 보전해주기 위해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을 주가 하락에 맞춰 함께 내릴 수 있는 단서조항을 붙여 놓는다. 발행 후 1년 동안은 매달, 1년 후부터는 3개월마다 일정한 날에 보통주 주가를 평가해서 그에 맞춰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을 조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평가일 전 1개월, 1주일, 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와 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 중 낮은 가격이 신주인수권 행사가액보다 낮으면 그 가격으로 조정하게 돼 있는데, 투자자들은 대충 그 즈음의 주가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이에 따라 주가가 하락하면 행사가액도 내린다. 그러나 반대로 주가가 올랐다고 행사가액도 올리는 경우는 없다.
BW 투자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달아놓는 건 그만큼 BW를 발행하는 기업들의 사정이 급해서다. 저리의 은행 대출이나 일반적인 유상증자가 여의치 않은 기업들이 BW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번 한진칼 제3회차 BW는 채권(한진칼3)과 신주인수권(한진칼3WR)으로 분리돼 각각 채권시장과 신주인수권시장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다.
한진칼3WR의 경우 최초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은 8만2500원이었으나 이후 한진칼 주가가 하락하면서 행사가액도 두 번 조정됐다. 9월3일에 7만7000원으로 조정됐고 그 후에도 약세를 보여 이번에 6만8300원으로 또 인하된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제한선이 있다. 최초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의 70%, 8만2500원의 70%인 5만7750원까지만 인하 조정이 가능하다.
한진칼3WR 거래화면. 이날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이 6만8300원으로 조정됐지만 HTS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출처: 미래에셋대우>
이렇게 행사가액이 조정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BW 공모에 참여해 신주인수권을 확보한 투자자라면 이익이 크게 줄었을 것이고, 상장 직후 매수한 투자자라면 큰 손실을 떠안고 있을 것이다. 주가가 하락한 만큼 신주인수권 매매가도 크게 하락했다. 한진칼3WR이 상장된 지난 7월 하순엔 2만2000~2만3000원에서 거래됐으나 지금은 1만1150원까지 추락, 반토막이 났다.
이날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이 6만8300원으로 하향 조정됐지만 현재 한진칼 보통주 주가가 6만9000원을 오가고 있으므로 지금 신주인수권을 행사해봤자 이익을 낼 수도 없다. 지금 신주인수권을 1만1150원에 매수해서 행사가액 6만8300원을 더 주고 6만9000원짜리 보통주를 받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니 신주인수권인 채로 팔아도, 주식으로 바꿔서 팔아도 둘 다 손해다.
그러나 길게 보고 투자한다면, 만약 그 사이에 주가가 더 하락했다가 회복한다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만약 주가가 6만원 이하로 하락해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이 최저 조정한도인 5만7750원까지 낮아진다면 그 후엔 주가가 얼마까지 오르든 신주인수권을 주식으로 바꿀 때는 1주당 5만7750원만 지불하면 된다. 주가가 예전처럼 8만원 위로 되돌아갈 경우엔 주가가 하락했던 것이 이익을 키워주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는 신주인수권 보유자가 행사가액을 적게 들이고도 동일한 수량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7월23일부터 8월12일까지 신주인수권 120만주를 주당 2만5000원에 공개매수했다. 이 신주인수권은 나중에 조원태 회장 측과 지분 경쟁을 벌일 때 주식으로 바꿔 힘을 보탤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해도 120만주의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려면 주식으로 바꾸려면 주당 8만2500원씩 총 990억원이 필요했지만, 6만8300원으로 하락한 지금은 819억원으로 170억원 이상 부담이 줄었다. 만약 주가가 추가 하락해 행사가액이 5만7750원까지 하락한다면 자금부담은 693억원까지 줄어들게 된다.
현재 3자연합 측은 한진칼3WR을 164만주 보유 중이다. 오늘 조정금액 기준 행사가 총액은 1124억원이다.
KCGI 등이 단기차익 목적으로 신주인수권을 사들인 것은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자금 부담이 줄어든 지금이 훨씬 유리해진 상황이다.
또한 초기에 BW 공모 당시 받은 채권을 활용하기에도 더 좋아졌다. 똑같은 보유 채권으로 더 많은 수량의 보통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조원태 회장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조 회장 측이 지분을 더 확보하려면 주식지분 1%당 현재 시가 기준 400억원이 필요하다. 내년에 열릴 정기주주총회가 다가올수록 이런 상황이 표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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