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패러디의 매력을 알자
2019-03-04 15:07:47 2019-03-04 15:07:54
작가 장정일(1962~ )의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시를 몇 번 읊조리다 보면, 라디오의 ‘버튼’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묻고 있는 느낌에 젖어들 것이다. 그리고 풍자의 목소리도 감지되리라. 더하여 자연스럽게 또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될 터. 그것은 바로 김춘수(1922~2004) 시인의 〈꽃〉이다. 
 
장정일은 이 시의 제목을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라고 붙이고, 부제로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라고 했다. 김춘수의 〈꽃〉,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시이지만 그 전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장정일의 그것과 느낌을 공유해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장정일의 시는 원작인 김춘수의 <꽃>과는 또 다른 의미의 재창조를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패러디(parody)다. 더불어 오규원(1941~2007) 시인의 〈꽃의 패러디〉도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후략). 역시 기존의 시 〈꽃〉과 상반된 관점에서 시상을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오규원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새로운 창조의 기운 같은 것이 읽힌다.         
 
이처럼 패러디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질서에 대한 재해석의 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재미나 놀라움을 잉태하고 있어, ‘창조’ 혹은 ‘창작’이라는 값어치를 갖는다. 물론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동등한 힘을 발휘한다. 필자가 이들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 것은 패러디가 창작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함이다. 즉,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의 차원을 넘어서서,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과는 별도로 창작이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확대해석해 보면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모든 행위에서도 얼마든지 패러디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패러디의 성공 여부는 기존의 것을 정밀하게 해석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능력과 노력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향기를 불어넣을 때 비로소 패러디는 꽃을 피울 수 있다.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의 아이폰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을까. 뉴턴, Newton, 1642~1727)이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과연 우연의 산물이었을까.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아이디어나 발명, 발견이 갑자기 뚝딱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패러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도 기존의 창작품이나 발명품에 대한 충분한 독해 능력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실천이 요구되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아이디어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이 시기에 맞춰 만물이 소생하고 봄꽃도 개화를 준비한다. 혹독하게 추위를 읽어낸 꽃들도 제 나름의 향기로 세상의 축제에 동참할 것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각각의 일상에서 패러디의 매력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재생산과 창조의 기회로 작용하고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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