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아이디어가 곧 자산인만큼 번뜩이는 사업 아이템 하나에 의존해 수천억 가치의 스타트업을 일궈내는 사례가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기업들도 직원의 사소한 의견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되돌아보고 있다. 조직에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실패도 용납하는 분위기 형성에 공을 들인이고 있다.
지난 11일 폐막한 'CES 2019'에서 참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다양한 혁신 제품 중에는 LG전자가 선보인 캡슐 맥주 제조기 'LG 홈브루'도 있다. 발효부터 세척까지 복잡하고 어려운 맥주 제조 전 과정을 자동화 한 제품으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가정에서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USA 투데이, 테크레이더 등 미국 유력 매체들은 LG 홈브루를 '갖고 싶은 제품'으로 소개했다. '세상에 없던 가전'을 추구하는 LG전자의 혁신이 또 한번 증명됐다.
LG전자는 지난 8~1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 세계 최초 캡슐맥주 제조기 'LG 홈브루'를 전시했다.
LG 홈브루는 한 직원의 유쾌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4년 진행된 LG전자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3위에 올랐다. '커피처럼 맥주도 집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경영진도 정수기의 온도 조절 기술, 김치냉장고의 발효 알고리즘 등 자사의 핵심 기술들을 활용하면 제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때마침 개인 만족을 지향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됐다. 이 삼박자가 맞아 탄생한 것이 지금의 LG 홈브루다.
개발이 순조로웠던 것 만은 아니다. 1·2등 수상작을 제치고 사업화 대상으로 선정된 이 아이디어는 기획에서 제품화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작 중 처음으로 사업화를 시도하는 탓에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아이디어 인큐베이팅은 지난 2017년 이노베이션사업센터에서 이름을 변경한 뉴비즈니스센터가 전담했다. 뉴비즈니스센터는 전사적 차원의 신사업 발굴과 전개를 담당한다. 이 곳에서 상품화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후 해당 사업본부로 이관되면서 본 궤도에 올랐다. CES 2019 현장에서 만난 뉴비즈니스센터 고위 관계자는 "최상의 맥주 맛을 내기 위해 수도 없이 맛을 봤다"며 "작은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탄생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창의성을 높이는 환경 조성은 필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12월 사내 혁신 프로그램 'C랩'을 만들었다. '하찮은 아이디어란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직원들의 창조적 도전을 격려하고 있다. 기존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는 많았지만 시행 1~2년 만에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삼성전자는 C랩 출범과 함께 '프로젝트 선발 시 1년 간 현업 배제'의 원칙을 세웠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현업 부서 복귀 혹은 분사(스핀오프)를 선택할 수 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는 삼성전자의 사내 혁신 프로그램 'C랩' 프로젝트 수행 팀들이 제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지난해 말까지 6년간 총 917명의 직원들이 228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완료 과제 180개 중 40개가 스핀오프를 통해 스타트업으로 새출발했고 78개는 삼성전자의 사업 곳곳에 활용됐다. 지난해 CES 2018에서 첫 공개해 본격적인 마케팅을 앞두고 있는 디지털 화이트보드 '삼성 플립'도 C랩이 아이디어 발제에서 시작했다.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가 '전자칠판'이라는 개념으로 제품의 사용성을 확인해보자는 의견이 나오면서 실제 개발에 착수하게 됐다. 삼성페이의 카드 추천 기능도 C랩이 출발점이 됐다. 직원들의 반응도 사뭇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회사다"라는데 상당수가 동의하며 자신감도 한층 높아졌다는 것. 회사 측에서도 고성과자 이외에 5% 안팎의 창의 인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SK하이닉스도 최근 직원들의 도전 정신 배양에 동참했다. 지난 17일 이천 본사에서 '하이개라지' 출범식을 열고 사내벤처 프로그램의 본격 운영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8월 공모를 시작한 이후 접수된 240건의 아이디어 중 6건을 최종 선발했다. SK하이닉스는 프로젝트 선발자들이 2년간 기존 소속에서 분리돼 별도의 전담 조직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창업이나 사내 사업화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C랩과 마찬가지로 하이개라지도 사업화에 실패했을 경우 재입사를 보장한다. 프로젝트 수행 기간에는 근무시간 자율제와 절대평가 기준 인사평가를 실시해 부담도 낮췄다. 여기에는 최태원 SK 회장의 의중도 상당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들과의 대화'에서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혁신성장을 위한 기본 전제는 실패에 대한 용납"이라는 등 실패를 끌어안는 사회 문화 형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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