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2018년 전자 업계는 부품이 주인공이었다. 2년가량 초호황을 경험한 반도체는 물론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탄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도 회사의 실적을 견인하는 효자로 발돋움했다. 이 같은 부품 전성시대를 바라보는 LG그룹의 속내는 복잡했다. 지금은 해당 산업에서 일말의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20년 전만해도 LG 품안에 있던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아쉬움도 잠시, LG는 자동차 전장, 로봇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을 캐시카우로 키워낼 수 있을 지 새롭게 출범하는 구광모호의 어깨가 무겁다.
LG에게 반도체는 '아픈 손가락'이다. 고 구본무 전 LG 회장의 일생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구 전 회장은 지난 1989년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금성일렉트론은 1995년 LG반도체로 상호를 바꾸고 이듬해에는 상장도 했다. 이후 LG반도체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며 성장했다. 구 전 회장도 반도체 사업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육성코자 했다. 전폭적 지원을 받은 LG반도체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4위, D램 6위라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광풍이 몰아친 직후인 1998년, 정부가 '재벌 빅딜'을 추진하며 LG반도체는 위기에 몰렸다.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 논의 끝에 LG반도체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59.98%를 현대에 넘겼다. 현대반도체로 이름을 바꾼 후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될 때까지 적지않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반도체 사업은 유지하는 것이 옳았다. 이 과정에서 크게 상심한 구 전 회장이 빅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발길을 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MLCC 사업은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LG이노텍의 전신인 LG전자부품 시절 MLCC 사업을 잠시 영위한 적은 있지만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조기에 사업을 접고 관련 생산설비를 삼성전기에 이관했다. 실제로 MLCC가 산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도 이후다. 업계에서도 "삼성전기가 오늘날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시기를 견디며 꾸준히 투자를 해온 결과"라고 평가한다. 일본 업체들에 맞서 사업을 유지해 온 덕분에 글로벌 선두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지난 9월 오스트리아 비젤버그에 위치한 ZKW 생산라인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점검했다. ZKW는 LG그룹 역사상 최대 금액을 베팅해 인수한 회사다. 사진/LG전자
LG는 이 같은 사업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도약에 더 치중하고 있다. LG LCD를 설립해 디스플레이 시장 성장을 견인했듯 미래 산업의 개척자가 되려는 것. 대표적 분야가 전장과 로봇이다. 그 중에서도 전장 사업에 대한 의지는 구광모 LG 회장의 선임 후 보다 두드러진다. 지난달 말 단행한 연말 인사에서 LG는 지주사인 ㈜LG에 자동차부품팀을 신설해 김형남 전 한국타이어 연구개발 본부장을 팀장(부사장)으로 선임했다. 김 부사장은 자동차 산업 전반에 대한 통찰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물로, LG가 육성 중인 자동차부품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전개하고 계열사간 자동차부품사업 시너지를 높이는 지원 역할을 하게 된다.
계열사 중에서는 LG전자가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상무를 VS사업본부 전무로 영입했다. 은 전무는 17년간 보쉬 독일 본사와 한국, 일본 지사에서 기술영업마케팅 업무를 수행했다. 오스트리아 전장 업체 ZKW 인수는 구 회장 선임 이전부터 진행했던 일이지만, 그룹 역사상 최대 자금을 투입해 이끌어낸 인수합병(M&A)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또 하나의 축은 로봇이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가 선봉에 서 있다. 로봇 사업 강화를 위해 로봇전문업체,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 등 외부와의 개방형 협력을 진행 중이다. 올 초에는 로봇 제품군을 총칭하는 'LG 클로이' 브랜드를 론칭하고 안내로봇, 청소로봇, 잔디깎이로봇, 수트봇, 카트봇 등 다양한 종류의 로봇 제품을 선보였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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