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적기를 놓치면 효과는 반감되고, 때론 불필요한 오해도 낳는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쩍 검찰 수사의 적정성과 압수수색 영장 남발을 지적하는 법원 내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하다.
임종헌 전 행정차장과 고교와 대학 1년 선배로 알려진 강민구 판사는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새벽 5시에 귀가한 지 약 4시간 뒤인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검찰의 밤샘수사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심야조사 결과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판사들이 인정하지 말자고도 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8일 "검찰 수사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며 검찰 수사 방식을 문제 삼았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도 29일 검찰의 수사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법원에서 압수수색 남용에 대해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하루 뒤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의 압수수색 과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표적인 인권 침해적 수사관행으로 지적되온 심야조사와 구속영장에 비해 쉽게 청구하고 발부하는 압수수색 영장과 관련한 경향은 개선해야 한다. 다만,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되고, 법원이 조사 대상이 된 상황에서 고위 법관들의 이 같은 주장이 시기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총 7656명이 검찰의 밤샘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오랫동안 시행되온 형사 제도상 시대에 따라 과거와 다른 기준을 설정하자는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통상의 국민이 대상인 형사사건에 대해 검토돼야 한다"며 "특정 개별 사건을 전체로 해서 전체적 법리에 대해 반성적인 고려가 나오는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그간 침묵하다 '옳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뗐다면, 최소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사법농단 의혹 사태에 대한 짤막한 자성이라도 언급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법원 전체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으나, 고위 법관들의 이같은 의견표명은 지난 6월6일에도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대법원 차원의 형사조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의 모습과 함께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 수 있다. 오해든 아니든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동여매지 말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홍연 사회부 기자(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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