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경희대 교수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은 지금 어디에 있나. 23주 183일 동안 1700만명 시민들이 광장에서 주권자로서의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대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뜨거웠던 변화의 열망을 뒤로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그라진 것인가. 2016년 겨울 이후 한국정치는 '촛불혁명의 제도화'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촛불의 열망은 2017년 5월 촛불대통령을 탄생시켰다. 대통령도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는 등 시민 속으로, 광장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인의 장막에 갇힌 구중궁궐이 아닌 광화문에서 시민과 호흡하는 대통령이 그려졌다. 인수위원회를 대신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는 그 어떤 정책보다 '광화문 1번가'가 시민들의 참여 속에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
변화의 시작이었던 촛불혁명은 2020년 총선이 지나서야 일단락될 전망이다. 광장의 촛불은 대통령을 바꿨고, 올해 6월 지방권력을 교체했으며, 2020년 총선에서는 촛불을 대표하는 새로운 국회를 갈망한다. 그리고 제도적 마무리는 개헌을 통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는 촛불헌법의 완성에 있다. 때문에 촛불은 아직 미완성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지방선거 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 선거는 민주당의 승리일지는 몰라도 촛불혁명의 승리는 아니었다. 민주당을 포함한 어느 정당도 촛불혁명의 정신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촛불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미투운동의 대표들을 공천하지 않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재벌의 갑질 문화에 저항하는 '을'의 분노도 담아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2030 촛불세대들을 공천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촛불의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16세기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피렌체 도시공화정의 혁명 이후만큼이나 한국 사회는 창조적 역동성으로 들끓고 있다. 민주당은 이들을 과감하게 공천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민주당은 촛불혁명의 중심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촛불 이전의 '도로 민주당'이 됐다.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청년세대가 정치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창구다. 300명 정원의 총선이 기득권 체제의 연속이라면, 전국의 수많은 지방의회 의원들과 단체장들은 최소한 청년들의 도전을 통한 역동적 공간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민주당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역사에서는 패했다. 마치 다음 총선까지 압승을 예상하는 듯 잔치에 취한 민주당의 모습에 국민이 느끼는 건 실망뿐이다.
그래서 이번에 뽑힌 민주당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사명은 '촛불대표'다. 촛불대표는 광장의 주권자 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게 나라냐',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도권 정당 속에 담아내야 한다. 국민들은 이제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국회에 단순히 위임해 두지 않는다. 청와대는 촛불혁명 이후 국민청원 제도 등을 통해 미력하나마 시민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정당 차례다.
한국정치는 촛불혁명 이후 광장과 제도권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광장과 제도권을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촛불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혁명은 한순간 타오르지만, 그 뜨거운 정신은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힘든 역사적 운명을 안고 있다. 혁명의 제도화는 결국 정당의 몫이다. 이것이 여전히 촛불대통령에 이어 촛불정당이 되려고 하는 민주당에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촛불정당 대표의 과제는 단기적인 혁명의 에너지를 장기적 목표와 조화시키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강력하게 폭발한 대규모 시위의 파괴력을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변화의 힘으로 조화시켜 나가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정부의 성공 여부는 행정부가 제2기 국정 아젠다를 새롭게 제시하고, 이를 민주당이 입법 등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데 달려 있다. 2018년 지방선거부터 2020년 총선까지 문재인정부 중반기가 촛불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8월에 선출된 민주당 대표의 임무는 입법과 제도 설계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임무는 촛불혁명의 단기적·폭발적 에너지를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변화의 열망으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촛불세대가 진출할 수 있는 공천제도의 개혁 등 주권자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과제도 맡겨졌다. 그가 촛불대표로 성공하는 게 한국정치의 진전이다. 촛불대표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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