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우 산업1부 기자
땅콩회항 사건의 당사자인 박창진 사무장이 대한항공 4노조를 이끌게 됐다. 그는 조양호 회장 일가 갑질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그는 2014년 12월5일 뉴욕발 인천행 항공기에서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인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갖다 줬다며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회항시키는 과정에서 심한 모욕을 받고 하기해야 했다.
한진 총수 일가와 박 사무장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박 사무장은 대한항공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됐다. 동료들은 피해자인 그를 애써 외면했다. 그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올해는 후두부 종양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 경영진에 맞섰다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까지 따돌림을 당하며 설 자리를 잃었다. 그랬던 그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을 계기로, 감춰졌던 조양호 회장 일가의 부당한 횡포와 비리 등이 드러나면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노조위원장 출마의 변을 통해 "더 이상 방관자로 남지 않겠다"고 말했다.
위기는 비단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내식 대란을 시작으로 정비 결함에 따른 항공기 운항 지연 등이 더해지면서 아시아나항공도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자질론이 도마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도 연대 투쟁에 나섰다. 을의 반란이다.
항공산업은 2006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면서 노조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는 게 노동계의 일관된 평가다.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노동3권도 반쪽짜리로 평가된다. 대다수가 업무를 유지해야 하는 필수인력으로 지정돼 있어 파업을 해도 효과가 없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직원들은 노조를 통한 적극적 투쟁이나 쟁취보다, 수동적 자세를 취해왔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180도 변하고 있다. '못 살겠다. 갈아 엎자'는 직원들의 분노는 노조 설립 및 가입으로 이어졌다. 대한항공은 박 사무장 등을 지도부로 한 4노조를 출범시켰다. 진에어 직원들도 노조 설립 준비를 마쳤다. 아시아나항공노조도 부활의 기류에 올라탔다. 한때 2000명을 넘던 조합원 수는 2005년 조종사노조 파업을 거치면서 급속히 악화돼 120명까지 줄었다. 그런데 최근 박 회장 퇴진 운동에 불이 붙으면서 노조에 가입하는 직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바라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더 이상 총수 일가의 횡포에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룹 재건이라는 박삼구 회장의 숙원을 위해 계속해서 경영난에 시달려야 하는 아시나항공 직원들도 그간의 침묵을 깨고 촛불을 들었다. 박 회장을 위해 춤을 추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꽃다발을 바치지도 않겠다고 다짐한다.
현재 국내 항공사 중 노조가 있는 곳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등 5곳이다. 노동계는 지금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항공업계 전체로 노조 설립이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 설립 및 활동의 필요성을 부채질한 이는 다름 아닌 총수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이었다.
구태우 산업1부 기자(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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