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촛불혁명의 아이들은 어디에?
2018-06-01 06:00:00 2018-06-01 10:01:03
임채원 경희대 교수
 
 
6·13 지방선거 출마자들 중에 '촛불혁명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2016년 촛불혁명이 항쟁 수준을 넘어선 혁명이라면, 적어도 정권교체를 할 정도의 항쟁인 경우 그다음 선거에서 당시 운동의 주역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는 게 상식이다. 그런 정치의 상식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 정치의 퇴행이 안타깝다. 포플리즘으로 치닫는 세계 정치의 흐름에서도 동떨어졌다. 
 
2016년 겨울은 기존의 정치학 교과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이었다. 이 일을 혁명에 이르지 못한 항쟁 수준의 정치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운동이 권력은 교체했지만 레짐(Regime)의 변화는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2017년 대통령선거로 권력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새로운 계급으로 권력이 이동한 게 아니라, 이미 10여년 전에 권력을 잡았던 기존 야당으로의 권력교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나 1917년 러시아혁명은 기존 지배계급 대신 새로운 계급이 권력을 장악했다. 이런 주장이 2016년 겨울 이후의 정치적 사건을 평가절하하는 주된 입장이다.
 
하지만 2016년 촛불혁명은 지배계급의 변화를 넘어선 레짐 자체의 변화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은 피라미드형 권력구조가 유지된 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만 교체됐다. 촛불혁명은 수직적 권력구조를 수평적 권력구조로 전환하는 권력구조 자체의 변화였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뽑고 그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위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새 형태의 주권자 민주주의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 주권자 민주주의로 전환한 것이다. 그래서 촛불혁명은 새로운 형태의 레짐 변화다. 항쟁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겨울혁명, 평화혁명, 승리한 혁명 그리고 문화혁명이다. 지금 문화적 감성은 갑질문화에 대한 거부와 미투 운동 등 젠더 형평성에서 화려하게 꽃피고 있다.
 
그런데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이 촛불혁명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2017년 대선에서 시민들은 촛불대통령을 뽑았다. 지방선거에서는 어느 때보다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선거 후보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됐다. 지방선거는 정치신인이 진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 정치운동들에서도 총선보다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신인들이 다수 배출된다. 그런데 한국의 주요 정당들은 촛불혁명의 시대적 과제를 외면했다. 그 반작용으로 2018년 총선에서는 유래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정치신인들이 국회의원에 선출될 것이다.
 
2011년 5월 스페인에서는 '15M(Quince Eme)',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분노하라)'라는 시민운동이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불붙었다. 유럽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자발적 시민참여로 시작된 이 운동은 3년 뒤 2014년 유럽 의회선거에서 '포데모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정치운동으로도 발전했다. 이를 통해 5명의 의원이 배출됐다. 포데모스는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주요 도시의 시장을 배출했다. 다음 총선에서 이들은 유럽정치의 중심축으로 성장, 기존의 스페인 양당체제를 허물고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페인의 시민운동이 제도권 정치로 진입하는 데는 3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스페인보다 한 달 뒤 2011년 6월에 시작된 오성운동은 지금 이탈리아 연정의 중심이 됐다. 이들은 이미 이탈리아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에 가장 핵심적 변수로 성장했다.
 
촛불혁명 4년 뒤에 치러질 2020년 총선에서는 촛불혁명의 아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원내로 진입할 것이다. 제도정당이 이 흐름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제도권 밖에서부터 만들어진 새로운 정치흐름이 2020년 이후 한국 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노무현, 이해찬 등 이후 한국 정치를 주도한 인물들이 속속 배출됐다. 이들은 이후 30년 동안 한국 정치사의 중심에 있었다. 꼬마민주당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 탄생까지 한국 정치의 파노라마를 보여줬다. '미순이·효순이 사건' 이후 2번째로 등장한 촛불집회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에서 연이어 열렸다. 그 직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한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게 한순간에 거대 여당으로 탄생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제도정당 안이든, 밖이든 촛불혁명의 아이들이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30년 이내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문재인 대통령처럼.
 
한국 정치의 혁명 주기는 30년이다. 촛불혁명은 적어도 30년 동안 한국정치를 좌우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에너지 원천은 촛불혁명이다, 이 혁명에서 혁명의 아이들이 탄생했다. 촛불혁명의 아이들은 나이가 아니라 그 정신을 간직한 사람이다. 20대 또는 30대일 수 있고, 5060세대 일수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 겨울 촛불혁명에 참가했거나 지지했던 촛불혁명의 아이들은 87년 민주화와 86세대의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 갑질문화에 반대하고, 미투운동의 주역으로까지 등장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소셜미디어의 새로운 개척자들이, 공감과 문화감성의 새로운 시민들이, 그리고 아직 발화하지 않는 새로운 영혼의 새싹들이 앞으로 한국 정치를 주름잡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도정당들은 이를 외면했다. 지방선거일까지 보름 정도 남았지만, 이미 이 선거는 역사에서 패배했다. 다음 총선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촛불혁명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임채원 경희대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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